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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더가 망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고란, 어쩌다 투자, 테더, 라임자산운용, DLF

[고란의 어쩌다 투자] 요즘 시장에서 우리은행이 ‘우리’ 문제가 됐네요. 우리은행은 과거 잘 나갔던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이 합병해 탄생했습니다. 당연히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은행은 합종연횡을 했고, 정부가 공적자금을 쏟아부어 살려낸 거죠. 합병 당시엔 한빛은행이었는데, 2002년 우리은행으로 이름을 바꿉니다. 은행권선 “그럼 우리의 은행(자행)을 부를 땐 뭐라 부르냐”면서 ‘우리’라는 보통 대명사를 뺏어간 데 대한 일종의 반발심(?)에 ‘워리’은행이라고 부르기도 했답니다(‘우리’라는 상호를 쓸 수 있었던 건 당연히 정부가 최대주주인 은행이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최근엔 우리은행이 정말 워리은행이 됐습니다. 고객들에게 근심을 안겨주는. 지난 번 다뤘던 독일 10년 만기 국채 금리에 투자하는 DLF(파생결합펀드)를 가장 많이 판 곳 우리은행입니다. 전체 금융권 판매액의 절반에 이르는 4000억 원 정도를 판매했습니다. 지난달 말 만기 돌아온 펀드의 손실률이 무려 98.1%. 투자자를 넘어 일반 고객들의 민심까지 들끓고 있습니다. DLF에 라임 사태까지...우리은행은 워리은행? 이번엔 ‘라임’ 사태까지 터졌습니다. 금융권서는 일종의 ‘블랙 리스트’처럼 ‘라임 리스트’가 돈다고 하네요. 국내 최대 헤지펀드 운용사 라임자산운용의 펀드가 말썽입니다. 주로 코스닥 CB(전환사채)나 BW(신주인수권부사채) 등에 투자하는, 이른바 메짜닌 전략을 구사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이 운용사가 펀드환매 중단 결정을 내렸습니다. 뭔가 위험을 감지한 투자자들이 너도나도 환매를 요청하자 유동성 부족 위기에 몰려 10일부터 환매를 중단했습니다. 환매 요청을 들어주다 자칫 들고 있는 자산을 헐값에 매각해 되레 투자자 손실 우려가 커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죠(애초 왜 메짜닌 전략을 구사하면서 펀드를 개방형(언제든지 가입과 환매 가능)으로 설정했는지 의문입니다. 대개는 운용의 효율성을 위해 폐쇄형으로 설정하는데 말입니다). 여기도 우리은행이 관련돼 있습니다. 8월 말 기준으로 판매액을 보니 대신증권(9801억 원, 18.3%) 다음으로 우리은행(8809억 원, 16.4%)이 많이 팔았습니다. 사모펀드는 대체로 증권사가 많이 취급하는데 우리은행이 1등에 맞먹을 정도로 많이 팔았다는 게 의외이긴 합니다. 역시 비이자수익을 늘리려는 은행 고위권의 경영 전략이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또, 이보다 더 큰 이유는 이 운용사의 대표가 실은 우리은행 증권운용부 매니저 출신입니다. 대학 졸업 후 우리은행에 입사해 주식을 운용하다, 은행을 나와 트러스톤ㆍ브레인자산운용을 거쳐 30대 초반이던 2012년 라임투자자문을 세웠습니다. 아마 자행 출신 매니저가 세운 회사에서 판매한 펀드라 더 믿고 판 게 아닌가 합니다. 정부의 선의가 라임 사태 키웠다? 라임자산운용 얘기를 길게 한 건 ‘펀드런’ 사태를 얘기해 보려고 한 겁니다. 투자의 핵심 리스크 가운데 하나는 유동성 부족입니다. 아, 이건 모든 경제활동에 해당 되겠네요. 돈줄이 막히면 사실, 아무것도 할 수 없죠. 기업들 가운데서 ‘흑자 도산’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유동성 리스크를 줄이는 방법은 시장의 활성화입니다. 언제든지 현금화가 가능한 시장이 있다면, 그 시장에서 거래도 활발하다면 유동성 리스크에 처할 일은 없습니다. 여차하면 팔면 되니까요. 주식시장이 대표적이죠. 그래서 주식형 펀드의 경우 폐쇄형이 드뭅니다. 특정 기업을 M&A를 시도하는 식의 이른바 ‘강성부 펀드’ 같은 게 아니라면요. 이 경우엔 갑자기 투자자가 돈 빼겠다고 하면 M&A 전략을 구사할 수 없기 때문에 환매 금지 조항을 넣는다거나 중도환매의 경우 수수료를 벌금 성격으로 무척 비싸게 매깁니다. 라임운용의 펀드는 채권에 투자하는 펀드입니다. 앞서 CBㆍBW 등 채권인 듯 채권 아닌 주식 같은 메짜닌 상품에 투자해 재미를 쏠쏠하게 봤습니다. 투자자들에게 안정적으로 두 자릿수 수익률을 돌려주면서 회사가 급성장했죠. 여기에 정부가 전략적으로 육성하겠다던 코스닥벤처펀드가 일을 키웠습니다. 정부에서 돈은 받았는데 정작 투자할 만한 우량한 기업은 없다 보니, 부실 기업들이 내놓는 CBㆍBW도 없어서 못 파는 지경이 된 거죠. 들어온 돈 만큼 투자하려고 부실 채권까지 끼워넣다 보니 지금의 사달이 났습니다. 연초부터 언론을 통해서 위기를 알리는 신호가 나왔지만 운용사 측은 문제없다는 반응이었습니다. 주식 성격이 있긴 하지만 어쨌든 채권이니 회사가 망하지만 않으면 문제될 것은 없죠. 그래서 위기를 알기는 기사에 계속 문제없다고 대응했는데 투자자들이 앞다퉈 환매를 요구하는, 이른바 펀드런 현상이 벌어지면서 환매 중단 조치까지 내렸습니다. 지금 들고 있는 채권을 시장에서 살 사람이 없기 때문에 현금화하려면 헐값에 넘겨야 하고, 그러면 본의 아니게 손실률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죠. 이론상 라임운용 측의 주장이 맞기는 합니다. 그런데 정작 진짜 채권 만기 전에 회사가 망하면 어떻게 하죠. 투자자들이 또 한번 큰 손실을 떠 앉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은행업의 본질은 이자 따먹기 라임운용은 펀드런이 문제지만, 전통적인 ‘런’ 현상은 은행에서 벌어졌습니다. 소위 뱅크런이죠. 그런데 잠깐, 펀드야 투자자산이니 손실이 발생한다지만 은행은 안전한 예금인데 왜 뱅크런이 발생하느냐고요? 여기서 ‘지급준비율’이라는 개념이 나옵니다. 흔히 은행을 욕하면서 하는 말이 ‘손 짚고 헤엄치기식 이자 장사한다’고 비판합니다. 그런데 이 비판은 잘못된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원래 은행이 이자장사하는 곳이거든요. 예대마진 먹는 게 은행업의 본질입니다. 은행은 법적으로 돈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곳입니다(수신). 코인 사기범들이 잡혀가는 주요 죄목 중 하나가 ‘유사수신’입니다. 수신(受信)을 하면 안 되는데 했기 때문에(유사) 범죄라는 거죠. 그렇게 돈을 받아서 다른 돈이 필요한 이들에게 더 비싼 돈을 주고 빌려줍니다. 그게 은행업의 비즈니스모델(BM)입니다. 돈을 모은 만큼만 빌려주면 어떻게 될까요? 그래 가지곤 돈을 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은행에는 수신의 권리를 주면서 가진 돈 보다 더 많이 빌려줘도 된다고 국가가 허용해 줬습니다. 대신 지급준비율(현재는 7%입니다)을 정했습니다. 혹시라도 맡긴 돈을 급하게 찾으러 올 사람에게 당장 내줄 돈은 은행이 가지고 있어야 하니까요. 곧, 100만 원을 누군가 은행에 맡겼다면 은행은 7만 원만 남기고 93만 원을 대출해 줘도 됩니다. 뱅크런, 자기충족적 예언의 실현 그런데 돈을 빌려준 사람들이 한꺼번에 너도나도 은행에 내가 맡긴 돈을 돌려달라고 찾아오면 어떻게 할까요. 은행에는 7만원 밖에 없는데 말입니다. 뱅크런입니다. 돈을 맡긴 사람들은 은행이 부실하다는 소문이 돌면 그 은행이 파산하기 전에 다른 사람보다 먼저 돈을 찾기 위해 잽싸게 움직입니다. 먼저 찾는 사람이 임자니까요. 가장 유명한 뱅크런 1907년 미국 뉴욕에서 벌어졌던 ‘니커보커 사태’입니다. 1907년 10월 22일 화요일 오전 9시. 당시 뉴욕에서 세 번째로 큰 신탁회사였던 맨하튼 5번가에 위치한 ‘니커보커 트러스트(Knickerbocker Trust)’의 커다란 청동문 앞에 100여 명이 몰렸습니다. 한 시간 뒤 정규 영업시간이 시작되자, 직원들은 빠르게 손을 놀리며 현금 뭉치를 예금자들에게 건넸습니다. 두 시간 만에 뉴욕의 4개 지점에서 800만 달러의 예금이 인출됐습니다. 소문은 미국 전역으로 퍼져 너도나도 예금을 찾겠다고 달려들었고, 찰스 바니 사장은 권총 자살했습니다. 니커보커를 시작으로 25개 은행과 17개 신탁회사가 파산했습니다. 금융가 JP 모건이 나서 겨우 이를 수습했죠. 이밖에도 여러 차례의 뱅크런 사태가 있었습니다. 국내에서 최근 벌어졌던 뱅크런은 2011년 저축은행 사태네요. 저축은행들이 무리하게 PF(프로젝트파이낸싱) 대출을 해 주다 부실 규모가 커지면서 결국 문을 닫는 일이 벌어지자 예금자들이 내가 먼저 돈을 찾겠다고 저축은행 앞에 진을 치는 일이 벌어졌죠. 그나마 외환위기 이후 예금자보호법이 생기면서 5000만 원까지는 원금을 국가가 보장해 줍니다. 시간이 걸리기는 합니다만 말입니다. 예금자보호법은 은행 보호법이다 뱅크런이 왜 일어나는 걸까요. 신뢰가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앞서 돈을 받는 행위를 수신이라고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수신(受信), 믿음(信)을 받는(受) 겁니다. 은행을 믿을 수가 없다면 돈을 도로 찾아가는 건 당연한 일일지 모르겠습니다. 요즘에 뱅크런이란 말은 못 들어봤다고요? 아마 그럴 겁니다. 앞서 말씀드린 예금자보호법 덕분입니다. 사실 말이 ‘예금자보호’이지 실은 은행보호법입니다. 은행은 신뢰를 잃을 수도 있지만, 맨 뒷단에는 정부가 있습니다. 은행이 망해도 정부가 법으로 보호해준다고 사람들에게 약속했습니다. 정부를 믿는 한 은행에 무슨 일이 생기건 내 5000만 원은 괜찮다고 걸 알기 때문에 뱅크런 대열에 합류할 필요가 없습니다. 은행, 크게 보면 금융기관은 신뢰를 먹고 삽니다. 신뢰가 무엇보다도 큰 자본입니다. 신뢰라는 자본이 있기 때문에 은행은 법정 지급준비율 7%만 빼고 전액을 대출해 줄 수 있습니다. 이쯤에서 코인 얘기로 돌아와서, 테더(Tether)사는 어떨까요. 투자자들은 테더사를 믿을 수 있습니까. 테더사가 첫 등장했을 때는 듣보잡 스타트업이었습니다. 누가 테더사를 믿겠습니까. 그러니 달러 예치금만큼만 테더(USDT)를 발행했습니다. 테더사는 못 믿어도 계좌에 달러가 있다면 믿을 수 있는 거니까요. 테더사의 도덕성을 믿는 게 아니다 테더사의 덩치가 커지면서 나름 신뢰를 쌓았습니다(차라리 신뢰라고 하기보다는 영향력이라는 게 이 경우엔 맞겠네요). 신뢰를 바탕으로, 곧 달러를 맡기고 USDT를 사 간 이들이 한꺼번에 USDT를 들고 달러로 바꿔달라고 회사문을 두드리지 않을 거라는 자신감이 생긴 모양입니다(아니면 편법으로 돈을 벌고 싶었을까요). 달러 예치금을 초과해 USDT를 발행한 걸로 의심한 뉴욕 검찰이 본격적으로 테더를 수사하고 있습니다. 이 판국에 테더 측은 “우리가 은행보다 낫다”는 주장까지 하네요. 예치금 비율만 보면 딱히 틀린 말도 아닙니다. 2018년 초에 비해 테더 리스크가 훨씬 줄어든 느낌입니다. 시장에서도 테더사의 도덕성을 믿는 건 아니지만, USDT의 영향력이 워낙 커졌기 때문에 테더사가 망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은 공고해진 듯합니다. 그런 믿음이 무너지지 않는 한, 테더사는 건재할 것 같다는 게 요즘 드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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