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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양가상한제는 시장 개입? 래디컬 마켓에 맡겨라

고란, 어쩌다 투자, 분양가상한제, 래디컬 마켓

[고란의 어쩌다 투자] ‘조국’ 이슈가 조국을 덮은 상황에서도 사람들의 입길에 빠지지않고 오르내리는 이슈가 있습니다. 부동산입니다. 최근엔 분양가상한제가 이슈입니다. 정부는 지난 7월 규제의 ‘끝판왕’격이라는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를 들고 나왔습니다. 이래도 겁없이 가격이 오를 거냐며 시장을 협박한 거죠. 시장은 두려울 게 없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일찍이 2005년 말씀하셨죠. “이미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간 것 같다”고. 정부의 규제 대책을 비웃기라도 하듯 강남 아파트값은 평당 1억 원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소위 전문가들은 정부가 시장에 개입한 말로는 좋지 않을 것이라고들 비판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전문가들의 우려는 현실이 됐습니다. 정부는 10월 1일 한 발 물러선 대책을 내놓습니다. 분양가상한제 6개월 유예. 갈팡질팡 정책이 되레 가격 급등을 불렀다는 비난이 쇄도합니다. 어째 정부가 끝판왕을 내놓고도 본전도 못 찾은 느낌입니다. 분양가상한제는 인디언 기우제? 분양가상한제가 뭔지를 서울시 도시계획용어사전에서 살펴봤습니다. ‘분양가격을 합리적으로 결정하기 위해 택지비와 건축비에 업체들의 적정이윤을 보태어 분양가를 결정하는 제도’라고 하네요. ‘집값 안정화 조치의 일환’으로 ‘분양가 자율화가 집값 상승의 주원인으로 보고, 택지비와 건축비에 업체들의 적정이윤을 더한 분양가 책정 방식을 법으로 규정하여 분양가격을 정책적으로 조정하는 제도’입니다. 역사가 제법 오래됐습니다. 비슷한 제도인 ‘분양원가연동제’는 1989년「주택법」에 의해 처음 실시됩니다. 그러나 곧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로 주택시장 경기가 가라앉습니다. 시장 안정화가 필요하기는커녕 시장 분위기 진작이 필요합니다. 1999년 국민주택기금을 지원받는 공동주택 외에는 분양가격을 전면 자율화합니다. 그러다 다들 아시지만 참여정부 시절 ‘버블7’을 위시한 집값 가격 폭등으로 다시 규제에 들어갑니다. 2007년 주택법을 개정해 2008년 1월부터 분양가상한제를 공공택지 뿐아니라 민간택지에도 적용합니다. 주상복합도 포함하고요. 분양가상한제의 역사를 보면 약간 ‘인디언 기우제’입니다. 인디언들이 기우제를 지내면 비가 온다고 합니다. 왜냐고요?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거든요. 집값 잡겠다고 분양가상한제를 도입하거나 적용 대상을 확대하면 이상하게 어김없이 시장 침체가 옵니다. 분양가상한제가 필요 없는 상황이 전개돼죠. 2008년 1월부터 민간택지에도 도입했지만, 2014년 말부터는 ‘사실상’ 폐지됩니다. 제가 ‘사실상’이라는 말을 붙인 건 제도가 있기는 한데, 분양가상한제 적용의 기준이 너무 까다로워져 실제로는 적용 대상 아파트가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2014년 말 이후 적용된 아파트는 단 한 곳도 없으니까요. 지난 7월 정부가 민간택지에 도입하겠다고 하는 것도 정확히 말하면 적용 기준을 느슨하게 하겠다는 겁니다. 웬만하면 대상에 걸리게끔 만들겠다는 거죠. 공급 부족으로 가격이 올랐다 정부는 7월 발표만으로도 심상치 않은 부동산 시장의 싹을 밟아버리고 싶었을 겁니다. 분양가상한제를 실시하면 당장 분양 가격이 하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건설업계에선 상한제가 도입되면 강남권 재건축 단지의 분양가가 20∼30% 가량 낮아질 것으로 예상합니다. 앞서 2007년 상한제 도입 당시 국토교통부가 시뮬레이션 결과를 공개했는데, 상한제 적용 이후 전국의 분양가가 16∼29%, 평균 20% 가량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교과서와 현실은 다른 걸까요. 시장에선 상한제가 확대되면 수익성 악화를 우려한 건설사가 주택 공급을 중단할 거고, 공급 부족은 집값 상승으로 이어질 거라고 경고했습니다. 어라, 시장에서 진짜 그런 일이 나타났습니다. 당분간 강남권에 공급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신축 아파트를 중심으로 가격이 되레 오르는 겁니다(아, 이와 관련해 지인 중 한 분은 분양가상한제가 아니라 ‘자사고(자율형사립고)’ 폐지가 꺼져가던 강남 집값에 다시 불을 댕겼다고 분석합니다. 대부분의 자사고가 다 강남권에 있으니 시험봐서 가야했던 자사고를 이젠 이사 가면 갈 수 있게 됐으니 강남 집값이 오른 거라고 합니다. 하긴, 지금 집값을 형성한 팔 할은 교육이니까요). 하필 6개월 뒤엔 선거가 있다 제 생각에는 말입니다. 이러거나 말거나 정부는 일단 발표한 정책에 대해서는 이견을 드러내선 안 된다고 봅니다. 7월에 국토교통부가 상한제를 들고 나올 때, 기획재정부는 어째 뜨뜨미지근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국가 전체의 경기를 걱정해야하는 기재부 입장에선 부동산 경기를 꺾는 상한제가 달가울 리 없겠죠. 그럼에도 부총리 위에 있다는 실세 김현미 국토부 장관의 말발이 먹힌 듯합니다. 일단 밀어붙입니다. 그러다 앞서 말씀드렸듯 강남 신축 아파트를 중심으로 되레 가격이 올랐고, 기재부가 목소리가 커져 갑니다. 결국, 10월 1일 기재부 차관(‘왕차관’으로도 불리는 김용범 전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입니다)이 국토부와 금융위를 대동하고 나와선 상한제를 6개월 유예하겠다고 발표합니다. 공급 절벽이라는 시장의 우려에 따라 일종의 숨통을 트여 준 거죠. 물론 투기를 막기 위해 강화된 대출 규제책도 패키지로 발표했습니다. 국토부 힘이 빠졌냐, 정부가 여론에 밀렸다 등의 분석이 나오자 김현미 장관이 다음날 바로 반박합니다. “상한제 후퇴한 것 아니다, 언제든 시행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죠. 그러면서 내년 4월 총선에 나올 거라고 합니다. 6개월 유예인데 내년 4월에 선거가 있다…. 어디까지나 음모론입니다만, 정부는 경기 침체 및 일부 지역의 여론 악화를 우려해 상한제를 내년 4월 총선으로 미뤘다는 시나리오입니다. 김현미 장관은 일산에 출마를 염두에 놓다 보니, 상한제를 찬성하는 여론 쪽으로 기울었다는, 어디까지나 ‘뇌피셜’입니다. 시장 급진주의, 모든 걸 시장에 맡겨라? 최근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진범이 잡히면서 영화 채널에선 때아닌 <살인의 추억> 열풍이 부네요. 말 그대로 틀면 나옵니다. 그 영화의 포스터가 생각납니다. ‘미치도록 잡고 싶었다’. 정부 마음이 딱 그렇지 않을까 합니다. 아마 ‘미치도록 (집값을) 잡고 싶’겠죠. 어떻게 잡을 수 있을까요. 대강의 댓글로 파악한 여론이 제시하는 해법은 ‘보유세 강화’입니다. 아, 표 떨어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역사적으로 시대와 국가를 막론하고 보유세 올려서 안 망한 정권이 없습니다. 꺼내기 힘든 카드입니다. 이런 마당이 우리 ‘코인충’(비하 의미 아닙니다. 뭐랄까, 애칭이랄까요)들 사이에선 최근 번역 출간된 한 권의 책이 화제입니다. 『래디컬 마켓』(도서출판 부키). 미국 시카고대학의 법경제학자인 에릭 포스너와 마이크로소프트(MS)연구소 수석연구원인 글렌 웨일이 함께 썼습니다. 불평등과 갈등으로 얼룩진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현재를 보다 공정한 세상으로 바꾸기 위해, 시장의 원리로 사회 제도의 근본을 재설계하자는 주장이 담겨 있습니다. 지난해 봄, 미국에서 처음 출간되자 반응이 아주 뜨거웠습니다. {{ETH}}의 창시자 비탈릭 부타린이 극찬해, 원서를 읽고 토론해보는 모임까지 열릴 정도였습니다. 이름만으로도 무시무시한 시장 급진주의. 이 책에는 소유권으로 파생되는 독점의 문제를 해결하는 ‘신박한’ 방법이 소개돼 있습니다. 시장에 맡기라는 겁니다. 아니 분양가상한제마저 들고 나온 건 시장의 실패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 아니던가요. 그런데 시장에 맡기라니요. 잘 보세요. 시장 ‘근본주의(fundamentalism)’가 아니라 시장 ‘급진주의(radicalism)’입니다. 재산권과 자유권을 무턱대고 주장하는, 주변에 널린 시장 근본주의자들의 해법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정부의 개입과 규제에 매달리는 소위 쌍팔년도식 좌파의 해법도 아닙니다. 부동산의 독점, 경매로 해결하라 저자들이 지적하는 사회 문제의 근원은 독점입니다. 독점이 뭔가요. 당장 떠오르는 건, 물건(재화) 파는 사람이 하나뿐이라 자기가 받고 싶은 대로 가격을 책정하는 경우죠. 하지만 넑게 생각하면 소유권(재산권), 특히 재화의 가치가 공공의 투자로 형성된 경우, 예를 들어 집(아파트)에 대한 재산권을 인정하는 것 또한 독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 공산주의 하자는 거냐고요. 아닙니다. ‘재산권=소유권’이 아닌 ‘재산권=사용권’의 개념으로 바꿔 생각해 보자는 겁니다. 멀리 돌아왔습니다. 분양가상한제 얘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상한제의 목표가 뭔가요. 집값 안정화입니다. 직접적인 처방은 보유세 인상이 있지만, 정권 연장을 위해선 차마 시행이 어렵습니다. 『래디컬 마켓』에 나온 ‘공동소유 자기평가세(common ownership self-assessment taxㆍCOST)’라는 해법을 적용해 보겠습니다. COST가 뭐냐고요? 간단합니다. ‘자신이 소유한 부동산의 가격을 스스로 매겨 공표하되, 반드시 그 가격을 기준으로 세금을 내는 것(Your Price Your Tax)’입니다. 평당 1억 원 한다는 강남 아크로리버파크를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30평대 아파트에 사는 A는 이 아파트 가격이 30억 원이라고 보고 보유세(1% 가정) 3000만 원을 냈습니다. A가 아파트를 팔고 싶으면 자신이 정한 신고 가격을 기준으로 한 일정 범위(혹은 상한선만 설정) 내에서만 팔 수 있습니다. A의 아파트값이 많이 올랐다면 그만큼 세금을 더 내야 합니다. 만약 세금 많이 내기 싫어서 가격을 낮춰 신고하면 A는 나중에 시장 가격 이하로 집을 팔아야할지도 모릅니다. 이 방법이면 보유세를 강화하지 않고도 집값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세부로 들어가면 허점이 많습니다. 『레디컬 마켓』의 저자들 또한 자신들의 논의가 단지 하나의 출발점이 됐으면 한다고 바랐으니까요. 선한 의도가 악한 결과를 낳는 일을 최근 들어 유난히 자주 목격하는 듯 합니다. 정교한 정책의 설계를 통해 어쨌든 정부가 집값을 잡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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