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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선물(Futures)은 선물일까... 밭떼기서 백트까지

고란, 선물, 비트멕스, CME

[고란의 어쩌다 투자] 코인 투자자들에겐 힘든 한 주입니다. 비트코인이 1000만원 밑으로 내려오는 등 코인 가격이 떨어진 게 가장 큰 이유일 겁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것 말고 비트코인의 장기 우상향을 믿는(거의 종교 수준으로!) 비트코인 맥시멀리스트인 제가 힘든 이유는 가격 급락 말고 또 있습니다. 믿었던 연인의 배신(?)과 시장은 ‘공정’할 거라는 환상이 깨져나간 데 따른 무력감이랄까요. 기대를 한 몸에 모았던 백트(Bakkt)가 영 힘을 못 씁니다. 이 와중에 시장을 조정하는 건 역시 고래(whale)였네요. CME(시카고상업거래소) 비트코인 선물 만기(27일)을 앞두고 벌어진 기관들의 시장 조작, 그리고 비트멕스(BitMex)에서 일어난 레버리지 100배 거래의 마진콜이 가격 급락의 주요 원인이라는 해석에 무게가 실립니다. 결국, 선물(futures)이 문제인 걸까요. 개미에게 선물은 선물(gifts)이 될 수 없는 걸까요. 선물(futures)이 도대체 뭐길래, 말입니다. 밭떼기를 아시나요? 출발은 좋았습니다. 선물(futures) 거래는 미래의 일정 시점에 미리 정한 가격으로 매매할 것을 현재 시점에서 약속하는 거래입니다. 선물이 나온 건 시장 상황에 따른 가격 변동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서입니다. 현대 자본주의의 근간이 되는 주식회사가 제일 처음 어디서 생겨났는지 아시지요. 1600년대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입니다. 네덜란드는 유럽에서 농업이 발달한 나라입니다. 아울러, 금융도 발달했습니다. 특히 선물 거래가 활발합니다. 왜냐고요? 날씨와 자연재해 등에 크게 좌우되는 게 농산물입니다. 몬산토 등 세계적인 농업회사에 농업과는 백만 광년 떨어진 것만 같은 선물 관련 부서가 회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선물을 통해서 농산물의 가격 변동 리스크를 없애야 회사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으니까요. ‘밭떼기’를 아시나요. 배추 농사를 짓는 농민들 입장에선 배추 농사가 풍년일지 흉년일지, 가격은 어떻게 변할지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배추값이 금값이 되면야 좋겠지만 배추가 넘쳐나 똥값이 될 수도 있습니다. 뉴스에서 배추를 놔두고 밭을 갈아엎는 모습을 한 번쯤은 보셨을 겁니다. 그런데 어느날 봄에 배추씨를 뿌리자마자 장사꾼이 와서 제안을 합니다. 집앞 텃밭에서 나오는 배추 전체를 가을에 얼마에 사겠다고 하는 거죠. 그 가격이면 원가에 노임(노동력)까지 반영한 돈은 확보가 됩니다. 하지만, 혹여라도 가을에 배추가 금추가 되면 어떨까요. 막심한 손해입니다. 농부 입장에서 주판알을 튕깁니다. 그리고 결정을 합니다. 만약에 일어날지 모르는 대박보다는 만에 하나라도 일어나서는 안 되는 쪽박의 위험을 감내하지 않기로. 장사꾼과 배추 밭떼기 계약(이 경우 정확히는 선도거래라고 하는 편이 맞다. 선물거래는 선도거래와 개념은 비슷한데, 좀 더 표준화ㆍ규격화된 거래라고 보면 된다)을 맺고 적당히 먹고 떨어지기로 합니다. 미래 쪽박의 위험을 없애는 거죠. 미두신(米豆神)이 있었다 역사적으로 세계 최초의 선물 거래는 일본이라고 합니다. 17세기경 도쿠가와 막부가 정부 주도형의 미곡(쌀) 거래를 개발하고 발전시켰다고 합니다. 사실, 지금까지 모든 주식ㆍ선물, 심지어 코인 투자자들도 사용하는 캔들 스틱 차트(Candle Stick Chart)도 일본에서 발전한 거라고 합니다. 국내 최초 선물거래는 일제강점기 인천 미두시장입니다. 일제가 미곡(쌀)의 품질과 가격을 표준화하겠다는 명목으로 1896년 개설한 인천미두취인소(거래소)에서 쌀 거래가 중일 전쟁 때까지 40여 년 간 성행했습니다. 선한 의도가 선한 결과를 낳지는 않지요. 선물 거래의 출발은 위험을 줄이는 것이었지만,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습니다. 선물을 투기의 수단으로 활용하기 시작합니다. 선물은 미래의 거래를 약속하는 것이기 때문에, 당장 거래 대금 전부를 지불하는 게 아니라 최소한만 계약금으로 걸면 거래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인천 미두시장이 그랬습니다. 가진 돈의 10배까지도 쌀을 살 수 있었다고 합니다. 전국에 난다 긴다하는 투기꾼들이 몰렸습니다. 1914년 발발한 1차 세계대전으로 쌀값 변동성이 커지면서 1910년 2000만 석대였던 쌀 거래량은 1920년엔 9000만 석을 돌파했습니다. 이때 등장하는 고래(?)가 반복창이라는 사람입니다. 쌀값을 귀신같이 알아맞혀서 ‘미두신’이라는 별명까지 붙었습니다. 12살에 미두시장에서 이름을 날리던 아라키라는 일본인 집에 심부름 하인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워낙 일을 똘똘하게 해내 2년 뒤 아라키의 중매점 요비코(중매점에 모인 미두꾼들에게 인천과 일본 오사카의 미두 시세를 전달하는 일을 하는 사람)가 됐다고 하네요. 당시 조선에서 난 쌀의 최대 소비처가 일본이었고, 오사카 도지마 시장의 시세가 인천 미두시장에 즉각 영향을 미쳤습니다. 당시엔 전화가 없으니 전보를 통해 시세를 전달받았는데 이 시세를 미두꾼들에게 전달하는 게 요비꼬의 역할이었죠. 반복창은 어린 나이에 언젠간 나도 미두로 돈을 벌겠다고 다짐했다고 합니다. 반복창은 1918년 19살에 중매점의 시장대리인으로 발탁됐습니다. 이후 이러저러한 과정을 거쳐(하나하나 설명하자면 복잡합니다) 반복창은 ‘미두신’이라는 별명까지 얻을 정도로 시세를 정확히 예측해 엄청난 돈을 벌어들입니다. 1921년엔 조선호텔에서 당시 ‘미의 여신’으로까지 불렸던 여성과 초화화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 그 이듬해부터는 반복창의 예측이 자꾸만 어긋납니다. 베팅을 반복하다 결국 2년 만에 전재산을 탕진했습니다. 이혼과 사기사건에 휘말려 서른 살에 중풍으로 쓰러졌다 결곽 마흔 살에 사망했습니다. 나중에서야 밝혀진 사실이지만 반복창이 시세 예측에 실패한 것은 일본 정부의 개입이 있었다고 합니다. 반복창의 성공을 보고 조선인들이 제2의 반복창을 꿈꾸며 미두시장에 뛰어들었고, 일본 정부는 합법적으로 이 돈을 쓸어간 것이죠. 선물 시장은 합법적인 도박판이라는, 결국 도박에서 돈 버는 건 하우스밖에 없다는 격언이 떠오릅니다. 선물 시장이 수산물 시장이던 시절이 있었다 미두시장은 너무 오래된 얘기고 반복창 같은 전설이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여의도에 전해져 내려왔습니다. 2000년대 중반 정부가 주식선물 시장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기 전까지는요. ‘목포 세발낙지’ 장기철 ‘목포세발낙지’는 대신증권 목포지점 영업부장을 지낸 장기철씨입니다. 외환위기로 시장이 출렁이자 하루 최고 9000억 원어치의 선물거래를 중개해 ‘미다스의 손’으로 불렸습니다. 2년 만에 차장에서 부장을 달았고, 30억 원의 성과급을 받았습니다. 1999년 회사를 그만두고 개인투자자가 된 뒤에도 높은 수익률을 올리며 승승장구했죠. 그런데 이 분은 현물 거래에는 별 재주가 없었던 모양입니다. 2002년 주식 투자로 수십억 원 손해를 보고 낙향했습니다. 하지만 2008년 다시 한 증권사의 이사로 복귀, 2011년 MB테마주에 투자했다가 결국 3억 원 정도 손실을 보고 이 주식을 손절매합니다. 결국, 계속된 투자 실패 후 2015년에 사기혐의로 징역 1년형을 선고받습니다. ‘압구정 미꾸라지’ 윤강로 ‘압구정 미꾸라지’는 서울은행 주식운용부 출신의 윤강로 전 KR 선물회장을 부르는 애칭입니다. 시장 주변의 위험을 미꾸라지처럼 잘 피해간다고 해서 주변에서 붙여준 이름이죠. 주가지수 선물 시장에서 종자돈 8000만 원으로 1300억 원을 벌었던 전설 같은 고수입니다. 서울은행 펀드매니저였던 그는 1994년 3개월간의 미국 시카고선물거래소(CBOT)에 연수를 갑니다. 모의투자에서 탁월한 성적을 거둔 그가 96년 국내 선물시장 개장과 동시에 퇴직한 다음 개인 자격으로 투자를 하기 시작합니다. 그날 시장의 종가까지 정확히 알아맞힐 정도였다고 하네요. 2004년 당시 한국선물을 인수해 KR선물로 이름을 바꾸고 ‘제도권’에 진입했습니다. 하지만, 1300억 원을 벌고 나서도 계속 투자했다가 2004년 500억, 2005년 100억, 2006년 45억 원씩 계속 손해를 봤습니다. 결국 2014년 IDS홀딩스에 인수되면서 윤씨는 회장직에서 물러났고, 이후엔 개인 아카데미(KR트레이딩아카데미)를 운영하면서 투자 전략을 강의했다고 합니다(2017년까지는 확인이 되는데 지금도 운영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전주투신’ 박기원 ‘전주의 대형 마트 경리 직원 출신’이라는 소문 외엔 신상에 대해 알려진 것이 없는 박기원씨는 ‘전주 투신’이라고 불렸습니다. 전주에서 개인 투자자가 투자신탁사 정도의 거대 자본을 굴린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라고 합니다. 박씨는 1990년대 말에는 선물 투자로 큰 수익을 냈고 2002년에는 하이닉스, 2003년에는 삼성전자 지분을 대거 매매해 고수익을 올렸습니다. 2003년 9월 19일, 대신증권에서 삼성전자 8만1000주의 매도 주문이 체결됐습니다. 이날 매도창구 1위에 올랐죠. 당시 증권사 관계자는 “전주에 사는 개인 고객이 삼성전자를 대거 매도한 것은 사실”이라며 “정확한 매도 물량은 밝힐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폭탄 매도 물량이 나오면서 삼성전자는 이날 3.15% 떨어졌습니다. 삼성전자 주가가 움직이면서 코스피지수도 약세로 돌아섰고, 코스피200선물지수도 하락쪾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현물 매도로 선물 가격을 움직인 거죠. 박씨는 2006년 대한방직 지분을 최대 21.6%까지 보유하며 경영권에 위협적인 존재로 부상했지만 그해 타 종목 투자 실패로 대한방직 지분을 대량 매도한 뒤엔 더 이상 외부에 알려진 소식이 없네요. 어떻게 지내는지 저도 궁금하네요. 아, 참고로 영화 <작전>(2009년)을 아시는지요. 맨 마지막에 ‘마산창투’라고 불리는 큰손이 등장합니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이 “마산창투가 뭐하는 회사야?”라고 묻자 “마산 어디 사는 슈퍼개민데 굴리는 자금이 웬만한 투자회사보다 커서 붙은 별명이죠”라고 답합니다. 영화 속 마산창투가 전주투신 박씨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캐릭터라고 하네요. 일설에는 전주에 굴러다니는 유일한 마이바흐 오너였다고 합니다(이 역시 확인은 안 됩니다. 주식판에 떠도는 전설입니다). 비트코인 급락, CME와 비트멕스의 합작품? 수요일 새벽의 악몽의 이유야 사후적으로는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래도 가격만 놓고 보자면 결국 CME와 비트멕스의 고래들이 벌인 짓으로 해석됩니다. 먼저, 27일은 CME 비트코인 선물 만기일입니다. 백트 출범 구체화되면서 6월 말 비트코인 가격이 연중 최고점 찍을 때 CME 비트코인 선물 거래량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하루 2조원 넘게 거래된 날도 있었죠. 당시 활황 분위기에 아마 롱포지션(강세에 베팅) 잡은 세력이 상당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27일 만기가 다가오면서 절반 정도가 청산 쪽을 택한 게 아닐까 합니다. 백트 출범 이후 강세를 예상하며 버티던 이들이 백트가 예상과 다른 결과 보이면서 증거금을 더 넣느니(매수 롱포지션을 들고 가는 것) 손실을 보고 만기 전에 일시에 물량을 정리하면서 가격 급락이 나온 게 아닐까 합니다. 특히 15분 사이 8% 급락을 부른 건 비트멕스의 100배 마진콜 청산 때문으로 보입니다. 비트멕스는 세계 최대 비트코인 선물 거래소(이곳은 비제도권 거래소, 백트와 CME는 제도권)입니다. 최대 100배까지 레버리지 가능합니다. 1억 원으로 100억 원을 거래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25일 새벽 15분간 8%가 급락할 때 5억5000만 달러(약 6000억 원)어치 청산 일어났다고 합니다. 대규모 물량 청산으로 가격이 하락했고, 이를 지켜보던 시장 참여자들이 일제히 패닉셀(panic sell)에 나서면서 연쇄적으로 가격이 하락한 것으로 보입니다. 전형적인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웩더독(wag-the-dog) 현상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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