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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로 달러’ 시대 가고 ‘리브라 달러’ 시대 온다

리브라, 페이스북, 페트로달러

Next Battlefield : Digital Assets 석유는 ‘검은 황금’이라 불린다. 시추공에서 뿜어져 나오는 원유의 시커먼 색깔에 세계 경제에서 황금만큼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렇게 중요한 석유는 미국 달러로만 결제가 이뤄진다. 이른바 ‘페트로 달러(Petro-dollar)’다. 1ㆍ2차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던 영국은 쇠락한다. 대신 전쟁에서 한 발 빗겨나 있던 미국이 세계의 중심으로 떠오른다. 기축통화의 지위가 영국 파운드에서 미국 달러로 넘어간 결정적 계기는 ‘브레튼우즈(Bretton Woods, 1944)’ 체제다. 회원국의 통화는 달러에 연동된다. 금 1온스당 35달러의 가치를 부여하는 ‘금환본위제’가 출범했다. 회원국들은 대외 지급준비금으로 실물인 금보다는 달러를 선호했다.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지위는 나날이 높아졌다. 1960년대 말 미국은 베트남 전쟁의 수렁에 빠졌다. 쌍둥이 적자(재정적자ㆍ경상수지적자)에 허덕였다. 이를 메우기 위해 미국은 달러를 찍어냈다. 브레튼우즈 회원국들은 달러 가치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달러를 금으로 바꿔달라 앞다퉈 요구했다. 하지만, 무턱대고 찍어낸 달러를 보증해줄 금은 금고에 없었다.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은 1971년 8월, 달러와 금의 교환 정지를 선언했다. 모라토리엄 선언과 다를 바 없는 ‘쇼크’다. 달러의 몰락은 정해진 수순처럼 보였다. 지구 공동체는 그러나, 공멸이 아닌 불합리하지만 지속가능한 체제를 선택했다. 회원국들은 같은 해 12월, 브레튼우즈 체제의 존속에 동의했다(스미소니언 협약). 세계 경제의 몰락을 담보로 한 세기의 협상은 ‘팍스아메리카나’의 출발점이 됐다. 기축통화는 양날의 검이다. 기축통화의 위상을 유지하기 위해선 경상수지와 통화가치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해야 한다. 세계 경제가 원활히 돌아가기 위해서는 대량의 달러 공급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선 미국이 경상수지 적자를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과잉 공급으로 달러 가치가 하락하면 기축통화로서의 신뢰성과 안정성을 상실한다. 결국, 달러 체제가 붕괴할 수도 있다. 반대로 추락한 달러 가치를 제고하기 위해 유동성 공급을 중단하면 세계 경제가 멈춘다. 이른바 ‘트리핀의 딜레마(Triffin‘s Dilemma)’다. 외줄타기를 계속하려면 달러의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끊임없이 맞춰야 한다. 스미소니언 협약을 통해 금이라는 담보에 묶여 있던 달러의 고삐가 풀렸다. 마음대로 달러를 찍어낼 수 있지만, 무턱대고 찍어 내다간 달러 가치가 하락한다. 가치의 하락 없이 찍어내려면 그만큼의 수요를 늘려야 한다. 미국이 둔 ‘신의 한 수’는 페트로 달러 체제의 구축이다. 1970년대 이후 전세계에서 산업화와 도시화가 이뤄졌다. 석유 수요는 나날이 늘어갔다. 중동 국가들은 연일 수천만 배럴의 석유를 세계 각지에 공급했다. 더 없이 좋은 달러 수요처다. 미국은 중동의 패권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를 공략했다. 이들과 독점적인 달러-원유 결제 협정을 맺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에 속한 다른 나라들도 달러 결제에 동참했다. 또한 중동 국가들은 석유 수출 대금으로 받은 달러를 미 월가의 금융기관에 맡겼다. 당시 헨리 키신저(Henry Kissinger) 국무장관은 이를 ‘페트로 달러의 재순환’이라고 명명했다.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제 2막이 화려하게 올랐다. 영원한 건 절대 없다. 페트로 달러 체제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신흥 경제대국 중국 때문이다. 중국은 위안화의 세계화를 선언했다. 2018년 3월에는 상하이선물거래소에서 위안화 표시 원유선물 거래를 시작했다. ‘페트로 위안(Petro-yuen)’의 탄생이다. 당장은 전세가 역전되지는 않겠지만, 경계를 늦출 수는 없다. 21세기 석유만큼 중요한 자원은 데이터다. 게다가 석유를 대체할 비전통 석유자원(셰일오일ㆍ오일샌드) 등의 생산 단가는 더 내려가고 있다. 수많은 파생적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데이터가 되레 석유보다 더 중요해질 수 있다. 미국은 페트로 달러에 이은 다음 묘수를 찾아야 한다. 21세기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석유, 바로 데이터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미ㆍ중 무역전쟁의 적절한 이름은 미ㆍ중 ‘통화’전쟁이 아닐까 한다. 데이터 사용에 대한 대가를 어떤 통화로 결제하느냐를 놓고 벌이는 왕좌의 게임이다. 데이터가 유통되고 집결되는 5G 통신망과 클라우드 사업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자 미국이 화웨이를 타격했다. 단순히 무역분쟁 협상을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페이스북은 올 초까지만 하더라도 데이터 오남용으로 회사가 해체될 위기에 처했다.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은 회사가 가장 논란이 되는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산업에 무작정 뛰어들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리브라 코인이라는 암호화폐를 자체적으로 발행하고 유통하는 비즈니스 모델은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에 정면으로 맞서는 무모한 행위처럼 보인다. 페이스북이 그 정도도 고려하지 않았을까. 필자는 되레 페이스북이 미 연방준비제도(Fed)와 긴밀한 협의를 거쳤다고 본다. 제롬 파월 Fed 의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리브라 프로젝트를 면밀히 검토하고 높은 소비자 보호 기준을 요구할 것이며, 적극 규제 및 감독하겠다”고 말했다. 관점을 달리 하면, 페이스북의 리브라 프로젝트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얘기다. 페이스북은 Fed에 어떤 청사진을 보여준 걸까. 아마 리브라 코인이 페트로 달러의 뒤를 이어 새롭게 펼쳐질 디지털 시대의 달러 체제 수호신 역할을 자처했을 것으로 본다. ‘리브라 달러(Libra-dollar)’의 탄생이다. 리브라 코인을 페이스북과 리브라 연합 플랫폼 소속 기업들(비자ㆍ마스터카드ㆍ우버ㆍ스포티파이 등)만 써도 사용자가 수 십억 명에 이른다. 여기에 리브라 코인을 활용한 각종 독점 서비스를 제공하면 더 많은 고객을 유치할 수 있다. 리브라 코인이 성공적으로 런칭된다면 글로벌 소매 결제 시장의 상당 부분을 대체할 것이다. 무수히 많은 데이터가 리브라 코인으로 유통될 때 잠재가치는 상상 그 이상이다. 여기서 주목해야할 포인트는 리브라 코인의 예치금에 편입되는 통화 바스켓의 구성이다. 통화 가운데선 달러 비중이 가장 클 것이고, 국채 가운데선 미국 국채 비중이 가장 클 것이다. 국제통화기금의 특별인출권(SDR)에서 달러가 차지하는 비중이 약 40%다. 유동화 측면에서 미국 국채를 가장 많이 편입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감안하면 리브라 예치금의 달러 노출 비중은 절반을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곧, 리브라 코인의 생태계가 커질수록 달러 수요도 덩달아 커지는 구조다. 페트로 달러와의 시너지도 기대할 수 있다. 페이스북이 주요국 중앙은행(Fed, ECB 등)에 이와 같은 시너지 효과를 어필한다면, 지금 수많은 정치권의 우려에도 리브라 코인은 세상에 나올 수밖에 없다. 미국은 디지털 시대를 앞두고 달러를 데이터 유통의 기축통화로 만들고 싶어한다. 1970년대 페트로 달러 체제에서는 월가의 금융기관들을 이용했지만, 앞으로는 페이스북 등과 같은 거대 플랫폼 기업들을 활용해서 말이다. 달러 기축통화 시대의 제 3막이 올라가기 직전이다. 이용재 『넥스트 머니』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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