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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대훈] 금과 달러가 걸어온 길③

한대훈, 금, 달러

[한대훈의 투(자 이야)기] 금과 달러가 걸어온 길③ 하지만 금본위제를 기반으로 한 미국의 달러 시스템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한다. 우선 궁극적으로 금 부족 문제가 해결되지 못했다. 1차 산업혁명 당시에는 증기기관이 광업(mining) 기술의 발전을 통해 금 생산량을 증대시키며 금 부족 문제를 해결했지만, 2차 산업혁명의 경제성장속도는 1차산업혁명의 속도를 압도했기 때문에 금 생산량이 이를 쫓아가지 못했다. 즉, 전세계는 금이 부족해진 것이다. #만성적인 금 부족 실제로 데이터를 통해 살펴보면 이는 보다 명확해진다. 18세기에는 금 생산량이 경제성장률을 앞질렀다. 금 생산량의 CAGR이 0.7% 정도인 반면 GDP의 CAGR은 0.56%에 불과하다. 18 세기를 전후한 시점에서는 금 생산 증대율이 마이너스로 전환된다. 이렇다 할 광구가 발견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나폴레옹 전쟁과 함께 금 부족 문제가 부각되면서 금본위제는 큰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이 위기는 1차 산업혁명, 그리고 증기기관에 따른 채굴기술 발전에 따라 1850년 금 생산 CAGR +20%에 육박하는 엄청난 생산증대로 인해 넘어서게 된다. 종국적으로 19세기 금 생산 CAGR 은 18세기를 뛰어넘는 +3.48%가 되고, GDP의 CAGR인 +1.86%를 크게 아웃퍼폼(outperform)해낸다. 금본위제가 유지됐던 이유다. 그러나 20세기 2차 산업혁명에서의 GDP CAGR 은 1 차를 훌쩍 뛰어넘는 +3.68%가 된다. 반면 추가적인 광구개발에 어려움을 겪은 금 생산 CAGR 은 +1.95%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된다. 금 본위제의 유지가 어려울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던 것이다. #설상가상 악재가 겹친 미국 그리고 미국은 상기에서 언급한 자연적인 금 부족 외에 또 한 가지의 큰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바로 패권국가의 전유물과도 같은 전쟁, 즉 베트남 전쟁이 화근이 된 것이다. 1960년을 시작으로 1975년까지 베트남의 통일과정에서 미국과 벌인 전쟁인데, 그다지 큰 소득을 건진 것도 없었던 미국은 이 때 막대한 재정지출을 기록하면서 과거의 스페인, 영국과 마찬가지로 부채 문제에 시달리게 된다. 또한 전범국이었던 독일, 일본의 산업 부활로 인해 무역수지에서 또한 피해를 보는 상황을 겪게 된다. 이와 같은 과도한 전쟁지출금액과 무역수지적자로 인한 재정악화는 자연스럽게 미국 내 금 보유고의 축소로 연결이 된다. 때마침 유럽 국가들은 미국에 대한 불안감(일각에서는 기축통화를 탈환하기 위한 방책으로서)으로 달러를 매도하고 미국으로부터 금을 매입하기 시작한다. 브레튼우즈 체제가 시작되면서 달러를 발행할 때에는 액면가의 25%에 해당하는 금은 반드시 담보로 들고 있겠다고 약속했던 미국은, 이와 같은 매도행렬에 금 보유고가 소실되자 결국 점점 화폐발행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러한 위기에서 미국의 선택은 무엇이었을까? 1931년 영국의 선택과 다르지 않았다. 바로 금태환의 중지였다. 실질적으로 1944년 이후 지속된 브레튼우즈 체제의 종료라고도 할 수 있는데, 1971년 당시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Richard Nixon)이 공식적으로 더 이상 달러와 금을 교환해주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게 된다. 이른바 닉슨쇼크라고도 불린다. 이 사건의 가장 큰 의미는 사실상 금본위제도가 종료되었음을 의미했다는 것이다. #달러 본위제의 시작 금본위제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기축통화국 자리에서 미국이 물러나는 것이 정상적이지 않느냐는 생각을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이 때 미국은 굳건함을 과시하는 가운데 화폐 역사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이 시작되었다. 바로 ‘달러본위’의 시작이었다. 화폐가 통용될 수 있는 근본은 ‘금’이 아니다. ‘신뢰’라는 것이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사실 이전까지 금본위제도에서의 금도 신뢰를 대변하는 하나의 물질이었던 것이지 금 자체가 신뢰는 아니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돈(Money)의 저자 펠릭스 마틴은 그의 저서에서 위기 상황에서 부족한 것은 금이 아니라 신용과 신뢰라고 언급한 바 있는데 이게 재확인된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이 시도한 달러 본위란 무엇인가? 2차 산업혁명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있었던 미국은 이 때 신뢰를 금이 아닌 미국이라는 국가 자체에 붙이는 시도를 하게 된 것이다. 쉽게 이야기해서 과거에는 ‘금’을 많이 가지고 있는 누군가가 이 실물을 바탕으로 발행한 화폐를 신뢰했기 때문에 이용했다면, 닉슨쇼크 이후로 미국이 선언한 것은 ‘미국’ 그 자체를 신뢰하면서 달러 화폐를 받아가라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2차 산업혁명의 종주국이자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지니고 있는 최강국가인 만큼, 그 이상으로 신뢰할 만한 누군가는 찾을 수 없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산업혁명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영국은 1차 산업혁명에서의 부의 축적뿐 아니라 증기기관에 의한 광업(mining) 발전을 토대로 막대한 금을 확보해 ‘금본위제 + 파운드 기축통화’를 거머쥐게 된다. 그리고 미국은 2 차 산업혁명에서 역시 영국과 마찬가지로 막대한 부의 축적을 내세워 ‘달러본위제+기축통화’의 힘을 누리게 된다. 그리고 이 달러 본위는 지금까지도 잘 유지되고 있다. 이를 다시 한번 정리해보자. 우선 영국부터 살펴보면, ① 화폐부족 1800 년대에서 나폴레옹 전쟁으로 대변되는 유럽의 전투 이후 각국은 보유한 금 대비 화폐부족 문제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 때문에 금본위/금태환을 중지하고 무작위로 화폐를 발행하면서 결국 인플레이션(inflation)이라는 문제를 발생시켰다. ② 문제해결: 영국과 1차 산업혁명, 그리고 금본위제도 이 문제는 결국 1차 산업혁명, 그리고 종주국 영국의 금본위제도로 해결된다. 영국은 1차 산업혁명의 종주국으로서 증기기관을 필두로 막대한 부를 축적하게 된다. 증기기관 자체가 광업(mining)의 혁신적 발달을 일으켜 금 생산량을 늘린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요인이다. 이를 토대로 최대 금을 보유한 영국은, 이를 바탕으로 형성된 신뢰를 이용하여 파운드 기반의 금본위제도를 시작한다. 많은 나라들은 영국의 경제력과 금 보유고를 신뢰해 파운드를 가장 선호했고, 이것이 파운드 기축통화의 시작이 된다. ③ 화폐의 신용: 최강대국 영국, 그리고 금 미국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① 화폐부족 영국은 제 1, 2차 세계대전 당시 무리한 재정으로 인해 화폐부족을 경험하게 된다. 이 때 지난 1800년대 나폴레옹 전쟁 때와 마찬가지로 금본위/금태환을 중지하고 무작위로 화폐를 발행하며 인플레이션(inflation) 문제를 재차 일으킨다. ② 문제해결: 미국과 2차 산업혁명, 그리고 달러본위 이 문제 역시 두 번의 세계대전 때 막대한 부와 금을 확보한 미국, 그리고 그 미국이 2차 산업혁명을 이끌면서 해결이 된다. 자연스럽게 재정문제에 시달리는 영국의 파운드보다 풍족한 재정을 보인 미국의 달러를 사람들이 선호하면서, 또한 1944년 브레튼우즈 체제를 통해 금환본위제도가 시작되면서 기축통화는 미국으로 넘어간다. 이후 미국은 결국 만성적인 금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국의 경제력/군사력을 기반으로 한 달러 본위를 시작하게 된다. 이것이 달러 기축통화의 시작이다. ③ 화폐의 신용: 최강대국 미국, 그리고 달러 그 자체의 신뢰 달러 본위는 사실상 지폐 본위를 의미한다. 신용을 국가(정부)에 결탁시켜서 그들의 재량으로 인해 발행을 결정하는 제도다. 이제는 사실상 전 세계의 대다수 국가들이 지폐본위제도를 이용하고 있다. 물론 기축통화국인 미국만큼은 아니지만, 국가의 신뢰도와 지폐를 연결 지어 자의적인 발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시작 부분에서 이와 같은 지폐 본위제도가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일반적인 시각에서 금 같은 현물이 아닌, 그저 미국이라는 강대국만 믿으라는 화폐시스템이 그다지 와 닿을 리는 없으니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각에서는 1976년 미국과 사우디의 ‘오일달러 빅딜’(OPEC의 모든 원유를 달러로 결제하는 것을 포함한 양 국 간 대규모 거래가 있었던 사건)이 금본위를 끊어내고도 달러가 굳건히 버틸 수 있었던 이유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오일달러 헤게모니는 당시에는 특히 달러 강세에 매우 큰 힘이 되었다. 그렇지만 그것이 전부라고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오일달러 헤게모니를 이끌어낼 만큼 세계적인 부와 군사력을 쥐고 있는 미국 힘의 일부라고 해석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실제로 그런 미국의 힘을 매우 잘 보여준 것이 리먼 사태 때 ‘양적완화’ 사건이었다. 매우 심각한 금융/경제위기 상황에서 Fed 의장이었던 벤 버냉키(Ben Bernanke)가 전례 없이 달러를 찍어내어 뿌려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달러에 대한 수요는 굳건하다. 지폐 본위가 성공적으로 전환되었음을 보여주는 가장 명백한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다. 지폐 본위제도는 분명 1차 산업혁명 막판 금 부족에 따른 경제/화폐 위기를 타개한, 그리고 최근 발생한 금융위기를 벗어나게 한 진보된 20세기 화폐제도 임에는 틀림없다. 한대훈 SK증권 애널리스트, 『넥스트 파이낸스』 저자 ※ 마지막 4편에서는 달러본위제의 문제점과 이로 인해 부상한 디지털화폐로 이야기를 이어나갈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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