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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수] 혁신을 원한다면? 규제 '완화' 아니라 '최신화'다

김문수, SAFE, 스타트업

한국의 암호화폐 기업가들이 가장 목말라 하는 것이 명확한 규제입니다. 암호화폐 산업의 명확한 규제는 언제쯤 이뤄질 수 있을까요. 힌트를 얻기 위해 다른 산업의 규제 사례를 찾아봤습니다.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려운 문제입니다. 스마트폰으로 가사서비스를 신청하면 3~4시간 집중적인 청소를 받을 수 있는 모바일 가사서비스가 인기입니다. 이때 청소를 해 주시는 분은 근로자일까요 아닐까요. 질문의 의도에서 눈치채셨겠지만 근로자로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1953년에 만들어진 근로기준법 11조에 ‘가사근로자에 대해서는 근로기준법을 적용하지 않는다’고 못 박아 놓았기 때문입니다. 가사서비스 기업이 가사근로자 분들을 직접 고용해 4대 보험을 지원하고 싶어도 할 수 없습니다. 파견법 위반입니다. 파견은 파견법에 허용된 업종만 가능합니다. 건물 청소는 허용 업종에 포함돼 있습니다. 가사 청소자는 허용 업종에 포함돼 있지 않습니다. 고용노동부가 2017년 가사특별법을 발의했습니다. 국회의 관심 부족으로 계류와 자동 폐기를 반복하며 아직까지 입법이 진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최근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국회를 방문해 조속한 처리를 요청한 것 중 하나도 ‘가사서비스 산업 선진화법’입니다. 해상 사고에서 구명 조끼에 GPS 위치 발송기가 달려 있으면, 단 한 명이라도 더 구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개인 인명구조용 해상조난 신호기’를 개발한 스타트업은 최근 규제 샌드박스에서 60대까지만 제작해서 기술력을 입증해야 하는 실증 특례를 받았습니다. 60대라는 기준의 과학적 근거는 무엇일까요. 이 기업이 60대만 만들면 다음 제품의 기술을 연구할 수 있을 정도로 자금을 마련할 수 있을까요. 생명을 구하려는 제품을 개발하는 기업이 60대가 아닌 100대를 만들어 시험하면 처벌을 받아야 하는 걸까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는 초기 기업에 ‘SAFE’ 방식으로 투자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SAFE(Simple Agreement for Future Equity) 방식은 초기 기업의 불명확한 기업가치를 정하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일단 투자를 하도록 촉진하는 제도입니다. 대신 나중에 회사가 커서 다음 투자를 받을 때, 초기 투자한 기업에 대해서는 리스크를 부담한 대가로 기업가치의 일정 비율을 할인해 주는 방식입니다. 미래 신뢰 기반의 약식 투자 방식은 미국에서 2013년부터 시작됐습니다. 투자자와 기업가의 시간을 대폭 아껴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국내에는 관련 법규가 없습니다. 한국의 유망 스타트업들은 글로벌 투자자가 SAFE 방식의 투자를 제안해 와도 투자를 유치할 수 없습니다. 6년이 지난 올해 들어서야 중소벤처기업부와 법무부가 SAFE 방식이 한국의 상법 체계를 위반하는 것이 아니라는 유권 해석을 내놓았습니다. 만약, 반도체 산업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우리 사회는 6년이라는 격차를 견뎌낼 수 있었을까요. 규제 완화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어지는 단골 구호입니다. ‘규제’를 뜯어보면 ‘규칙(規則)’과 ‘제도(制度)’입니다. 완화는 느슨하게 한다는 뜻입니다. 법치국가에서 법으로 정한 규칙과 제도를 스스로 완화하는 것은 자기모순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이라고 불릴 만큼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규제의 완화가 아닙니다. 규제의 ‘최신화’입니다. 규제를 시대 변화에 맞게 최신화하는 것은 법의 권위를 지키는데 도움이 됩니다. 시대가 변했는데 과거의 규제를 기반으로 합법과 위법의 잣대만을 들이대면 미래 세대는 지지를 거둬들이고 국가적으로는 손해가 날 것입니다. 규제를 완화하는 것은 관리적인 관점이고, 규제를 최신화하는 것은 전략적인 관점입니다. 규제를 최신화 하려면 더 많은 학습과 치밀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시대에 맞는 규제를 설계하고 국가간 경쟁에서 대한민국이 주도할 수 있도록 규제를 설계하는 것은, 국가의 전략을 설계하는 것입니다. 파충류나 갑각류처럼 성장하면서 탈피해야 하는 동물이 제때 탈피를 못 해 신체 일부가 괴사하는 것을 ‘탈피부전’이라고 합니다. 유튜브가 한국의 동영상 생태계를 잠식했고 페이스북의 암호화폐 리브라가 디지털 금융 패권의 야망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기적처럼 산업화와 민주화를 달성해 온 대한민국입니다. 이런 나라가 과학기술의 발전을 철학적으로 소화하지 못해 탈피부전에 걸리는 것은 국가적 손해입니다. 경쟁력 있는 규제 설계는 국가 전략의 설계입니다. 김문수 aSSIST 경영대학원 크립토MBA 주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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