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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대훈] 기술이 먼저고 뱅킹이 다음인 세상(2)

한대훈,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파괴적 혁신

[한대훈의 투(자 이야)기] 야심차게 기획했던 어플리케이션(App)이 만족할 만한 성과가 나오지 않자 K씨는 깊은 상심에 빠진다. 분명 자신은 틀리지 않았다. 고객 투자자금 보호가 미흡하고, 불안정한 보안 시스템을 갖고 있는 메신저나 인터넷 포탈과 같은 곳이 통장을 만드는 것이 미덥지 않고, 세상이 이를 몰라주는 것 같아 야속하다. 회사에서는 서둘러 디지털금융 T/F를 만들었고, K씨는 이곳에 차출됐다. 자신의 업무도 아닌데 괜한 짓을 했다는 후회, 그렇다고 이런 곳에 좌천을 시킨, 자신이 평생 청춘을 몸바쳐 온 은행에 대한 배신감이 든다. 그래도 디지털금융 T/F를 맡아 달라는 부탁을 거절할 수도 없다. 그리고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트렌드라면 이를 마다할 이유도 없다. 얼른 팀을 꾸리기 시작했다. #K씨의 절치부심 채용공고를 올리고 사내공모도 시작했다. 외부에서 전문가 S를 영입했다. 핀테크 전문가란다. 사실 그가 하는 이야기를 온전히 알아들을 수는 없다. 하지만 든든하다. 그가 하는 말에 자꾸 빨려든다. 과학고를 졸업하고, 컴퓨터공학과를 나온 L도 IT팀에서 데리고 왔다. 컴퓨터공학이 전공이면 이 일에 최적화된 인재다. 사내공모에는 여러 명이 지원했는데 그 중 P를 선택했다. 면접 때 비트코인 이야기, 해외 payment 시스템 동향, 해외 굴지의 금융기관의 디지털금융시장 진출에 대한 이야기를 확신에 찬 논조로 이야기하던 친구였다. 글로벌 역량을 갖춘 친구다. 이렇게 4명으로 처음에 팀을 꾸렸다. 핀테크 전문가, IT전문가, 글로벌 역량 등을 갖춘 멤버들을 보니 어벤져스가 따로 없다. 든든하다. 첫 미팅을 시작했다. S는 플랫폼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하게 어필한다. 이제는 바야흐로 플랫폼의 시대고, 플랫폼을 갖추지 못한 은행들은 망할거란다. 나와 연배도 비슷해 보이는 그 친구의 말이 제법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방법이 문제였다. 이미 앱(App)을 만들어서 실패했던 트라우마가 불현듯 떠오른다. 하지만 S는 기존에 없던 새로운 앱을 만들어야 한다고 이야기를 이어간다. 은행, 보험, 증권 업무 등 우리 은행의 계열사를 총동원해 모든 금융업무가 가능한 앱, 그리고 많은 유저를 확보한 기업들과의 협력을 통해 그 업무를 일부 할 수 있는 편리한 앱, 젊은이들의 취향을 고려해 그들이 좋아하는 게임이나 연예인 관련 제품을 거래할 수 있는 앱을 제안한다. 역시 전문가답다. 콜라보의 시대에 맞는 앱, 밀레니얼 세대를 겨냥한 앱. 그래 이제 은행도 변해야 한다. IT전문가인 L은 그럼 앱을 어떻게 만들지 구성을 잡아서 알려달라고 빠르게 대답한다(사실 L은 금융에는 큰 관심이 없고, 코딩에 흥미가 있는 훌륭한 개발자다). 역시 우리팀이다. 든든하다. 그런데 P가 반대의사를 보인다. 여기서 밀레니얼 세대는 자신밖에 없는데 자기는 그런 거 안 쓸 거 같단다. 그리고 외계어를 쏟아 내기 시작한다. 요즘 친구들은 당당하게 자기 의견을 표현한다는 친구의 말이 떠오른다. 나 때는 저런 반대는 상상할 수도 없었다. 그래도 명색이 디지털금융 T/F인데 그 친구의 의견을 경청했고, 결국 다수결로 결정하기로 했다. 3:1로 앱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P가 실망한 표정이지만 원래 그때는 다 그런 거라는 말을 속삭이며 어깨를 다독여준다. #P의 동상이몽 P는 디지털금융에 관심이 많다. 여러 플랫폼 기업들의 금융업 진출은 시간 문제라고 생각한다. 규제 때문에 플랫폼 기업의 금융업 진출이 어렵다는 주장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규제는 시간만 벌어줄 뿐이라는 생각이다. 직접 플랫폼 기업으로 이직해 금융업무를 담당하거나, 유망한 핀테크 회사로 이직해 사업을 하는 것도 생각해봤지만 시기상조라고 생각했다. 대신 이곳에서 디지털금융 업무를 담당하면서 미리 미래를 준비하고 싶어 T/F에도 지원했다. P가 생각하는 금융의 미래를 빌 게이츠와 알리바바가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빌 게이츠는 뱅킹서비스만 필요할 뿐 뱅크는 없어진다고 예측했다. 급기야 오픈소스(open source)로 방향을 선회한 마이크로소프트는 디지털자산의 대표적인 오픈소스인 비트코인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알리바바는 알리페이를 활용해 이미 금융업을 영위하고 있다. 알리바바가 플랫폼 기업인데 금융업 진출을 했고, 이미 대단한 성공을 보이고 있다고 상사 K에게도 이야기했지만 그건 중국의 특수한 케이스 때문이라는 대답만 들었다. 아마존, 페이스북 등이 글로벌 은행을 지향하고 있는데 내가 다니고 있는 이 은행이 그들의 침투에 맞서기 힘들 테니, 방안을 강구해야한다고 주장했지만, 해외 기업이 국내에서 금융업을 하기에는 진입장벽이 높단다. 해외 굴지의 글로벌 IB가 국내에서 철수한다는 소식을 예로 들면서 말이다. 디지털금융은 국경이 없다. 이런걸 몰라주는 상사들이 너무 야속하다. 밀레니얼 세대가 사용할 엡(App)을 만들자고 하지만, 단언컨데 P 자신도, 내 주변의 친구들도 그 앱을 사용할 것 같지는 않다. 계속 태클만 건다고, 네 의견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국내 플랫폼 기업들과의 협업, 기존의 오픈소스를 활용한 방안 등을 제시했지만 번번히 거절당했다. 우리가 플랫폼 기업이 주도권을 쥘 수 있고, 비트코인이 무슨 오픈소스냐며 핀잔만 들었다. 골드만삭스랑 피델리티가 앱을 못만들어서 협업을 하는게 아니고, 마이크로소프트와 스퀘어(Square)가 왜 비트코인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 열심히 이야기했지만 역시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긴 여정의 시작 결국 또 한번의 플랫폼을 만들기 위한 긴 여정이 시작됐다. 이번엔 달라야 한다. 밀레니얼 세대를 겨냥해야 하고, 다른 기업과의 협업을 통해 플랫폼으로 발돋움 해야 하며, 글로벌 역량도 과시해야 한다. P의 의견을 너무 묵살한 거 같아 그의 의견 중 디지털금융은 국경이 없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로 한다. 글로벌이 이번 플랫폼의 방점을 찍을 것이다. 해외출장도 보내줄 테니, 해외 핀테크 기업과의 협력 방안도 모색하라는 주문을 P에게 했다. S는 계열사 내의 보험, 증권 담당자를 만나 플랫폼 런칭 계획을 설명하느라 정신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행복해 보인다. L은 빠른 손놀림으로 앱을 만들고 있다. 어벤져스가 움직이기 시작했으니 이 프로젝트는 반드시 성공할 것만 같다. 격려 차원에서 회식자리를 마련했다. 실망한 기력이 역력한 P에게 사기를 북돋아줄 겸, “글로발”로 건배사를 준비했다. 팀원들에게 ‘글로발’로 운을 띄워 줄 것을 부탁한다. “글!” “글로발 빅3 은행으로” “로!” “로컬 은행의 한계를 디지털금융과 함께 뛰어 넘어” “발” “발사!!! 건배!!!” 하지만 글로벌 빅3 은행으로 도약하려는 꿈은 발사되지 못했다. 플랫폼 기업들은 이 은행의 협력 제안을 거절했고, 다른 핀테크 스타트업에 투자했지만 원하는 결과는 나오지 못했다. S가 말한 플랫폼은 없었다. L은 S의 구상을 있는 그대로 구현했지만, 고객친화적인 앱을 만들지는 못했다. P는 나이가 어렸고, 경력이 짧았고, 그가 만나본 해외기업들은 P의 제안을 거절했다. #파괴적 혁신이란 무엇인가 클레이튼 크리스텐슨의 저서 혁신기업의 딜레마(The Innovator’s Dilemma)는 세간의 관심을 받은 명저다. 크리스텐슨은 성능을 개선하고 이전보다 발전되는 과정을 ‘존속적 혁신(sustaining innovation)'이라고 따로 구분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혁신이 여기에 해당한다. 반면, 후발기업이 제품을 단순하고 쉽게, 그리고 저렴하게 제공하면 시장 점유율을 빼앗아 올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시장에 진입하는 것이 바로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이다. 존속적 혁신만 하고자 하면, 거듭되는 파괴적 혁신을 통해 디스럽터(Disruptor)라는 소리를 듣는 플랫폼 기업들에게 주도권을 내줄 지도 모른다. 우리가 오늘날 존속적 혁신만을 외치는 사이, 파괴적 혁신을 일삼았던 디스럽터(Disruptor)들은 이제 금융업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한대훈 SK증권 애널리스트, 『넥스트 파이낸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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