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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대훈] 기술이 먼저고, 뱅킹이 다음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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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대훈의 투(자 이야)기] K씨는 학창시절 열심히 공부를 해서 명문대에 진학했고, 누구나 선망하던 은행에 다니고 있다. 자신이 다니는 은행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해서 양복 상의 왼쪽 깃에는 항상 은행 배지를 꽂고 다닌다. 열심히 살면 안될 것이 없다는 일념으로 살아왔고, 이러한 믿음과 신념을 아들에게도 꼭 알려주고 싶은 좋은 아버지다. #은행원 K씨의 일상 어느 날 고등학교 동창 모임이 있어서 가족동반으로 참석했다. 늘 그렇듯 양복 상의 왼쪽 깃에는 은행 배지가 빛나고 있었다. 동창 모임이 한창 무르익었을 때, 오랜 친구의 아이들이 너무 귀여워서 5만원짜리 용돈을 쥐어주는 넉넉함도 과시했다. 근데 어째 아이의 표정이 마냥 밝지 않다. “‘문상’으로 받아야 현질할 수 있는데”라는 이야기도 들리긴 하는데 도통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모임을 마치고 친구들과의 단체 채팅방에 은행 계좌번호를 올리면서 회비정산도 마쳤다. 오늘 하루도 성공적인 하루였다. 그리고 다음날 회사에 갔는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린다. 국민 앱(App)으로 불리는 모 회사와의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자기 팀 직원 P가 그곳에 남는단다. 4차산업 시대에 걸맞게 IT회사와 협업의 기회도 갖고, 복귀해서 그 역량을 바탕으로 은행 발전에 기여하라는 자신의 뜻을 요즘 친구들이 몰라준다. 요즘 친구들이 ‘워라밸’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신문 기사가 갑자기 머리를 스친다. 나 때는 분명 안 그랬는데, 요즘 친구들은 근성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앱을 켜본다. 이 메신저 회사가 뭐가 좋다고 그곳에 가는지 이해가 안된다. 다른 메신저가 나오면 없어질 수도 있는 회산데 말이다. 어린 친구들에게 자기가 괜히 오지랖을 떨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간다는 친구들을 어떻게 말리겠나. 잘 보내주자는 넉넉한 마음으로 단체 채팅방을 만들고, 우리끼리 돈을 모아서 선물이라도 하나 사주자고 했다. 내가 사줄 수도 있지만, 괘씸한 마음에 그러고 싶지는 않다. 총무 일을 잘하는 L 대리에게 돈을 걷어서 넥타이 하나 사오라고 시킨다. L 대리는 알겠다는 말과 함께 2만원씩 보내달라는 메시지를 단체 카톡방에 올린다. 근데 계좌번호를 안올린다. ‘조금 있다가 올리겠지’ 생각을 하는데 L 대리가 내 자리로 온다. 나만 아직 2만원을 안줬단다. ‘계좌번호를 안 알려주는데 어떻게 주냐’고 따지고 싶지만 꼰대로 보일까봐 “깜빡했다”는 말과 함께 2만원을 지갑에서 꺼내 건내 줬다. 그 날 저녁 국민 앱으로 이직한다는 P의 송별회 자리가 열렸다. 술자리가 한창 무르익었을 무렵, K씨는 이직하는 이유가 뭐냐고 P에게 물어본다. P는 디지털 금융의 빠른 변화를 몸소 체험했고, 앞으로는 디지털뱅킹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가 미래를 선도할 것 같아 이직을 결심했다고 한다.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K씨의 승부수 송별회를 마치고 퇴근한 K씨는 침대에 누워 곰곰이 생각을 해본다. “디지털 금융, 디지털 뱅킹” 그리고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래, 우리도 만들면 된다. 우리도 멋진 앱을 만들면 된다. 지금 생각해보니 우리 은행 앱의 디자인이 좀 별로였다. 더 역동적이고 예쁘게 만들면 된다. 이미 많은 고객을 확보하고 있으니, 멋진 앱을 만들면 우리가 디지털금융을 선도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증권ㆍ보험ㆍ카드사도 함께 운영하고 있으니 이것을 잘 엮으면 시너지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왜 진작 이런 생각을 못했나 하는 자책감과 내일 출근하자마자 기획안을 올리면 되겠다는 두근거림이 공존한다. 다름 날 회사에 출근한 K씨는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디지털 금융의 첫걸음인 멋진 앱을 만들어야 한다는 기획안을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멋지게 기획안을 작성하고 있는데 TV에서 국민 포털 N사가 통장을 만들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젠 여기저기 다 통장을 만드는구나, 금융회사도 아닌 회사들이 통장을 만들어봐야 고객 예치금을 유지하면서 투자자 보호가 안 될 텐데 왜 헛심을 쓰는지 이해가 안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TV를 들어보니 N 포털에서 쇼핑할 때 혜택을 준단다. 헛웃음이 나온다. 아니 누가 포털에서 쇼핑을 한다고 저러는지 이해가 안된다. 금융의 ‘금’자도 모르는 사람들이 보여주기 식으로 만들었다는 생각 밖에 안 든다. 그리고 기획안이 완성됐고, 평소에 회사에서 능력을 인정 받던 K씨의 기획안이 통과됐다. #K씨의 성공 며칠 후 멋진 앱이 출시됐다. 디자인이 약간 마음에 안 들긴 하지만, 나름 만족스럽다. 광고도 쏟아내기 시작했고, 앱은 주간 다운로드 수 1위를 기록했다. 이번에도 해냈다는 생각에 K씨는 몹시 흥분되고 뿌듯하다. 디지털금융을 선도하는 느낌이다. 갑자기 자기가 아끼던 직원 P가 생각난다. 여기서 같이 디지털금융을 선도하면 될 것을, 왜 좋은 직장 박차고 고생길로 접어들었는지 안타깝다. 그래도 자신의 선택인 것을 어쩌겠나. 오늘은 성공의 느낌을 계속 느끼고 싶다. 저녁 회식자리도 마련했다. 멋진 건배사도 준비했다. 팀원들에게 ‘디지탈’로 운을 띄워 줄 것을 부탁한다. “디!” “디지털 금융” “지!” “지가” “탈” “탈환했습니다!!! 건배!!!” 오늘은 너무 기분이 좋은 날이다. #리뉴얼의 시작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주간 다운로드 수 1위를 기록한 앱이 순위권에서 사라진 것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다운로드했으니 접속 시간을 봐야한다고 주장했지만, 기존 앱과 별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때 마지막에 고민했던 디자인이 생각난다. 그래, 디자인 때문이다. 리뉴얼을 제안한다. 그리고 자본력을 과시해 신규 가입자들에게 커피 한잔을 나눠주는 이벤트를 하자는 제안도 함께 올렸다. 며칠 후 리뉴얼된 앱이 나왔고, 커피는 빠르게 소진됐지만 이용자들은 여전히 앱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리뉴얼의 무한 루프가 시작됐다. #뱅크 4.0 금융계의 미래학자 브렛 킹((Brett King)은 그의 저서 ‘뱅크 4.0’에서 현재의 은행이 미래 금융에 살아남기 위한 방법으로 다음을 제시했다. (1) 기술 인사를 이사회 멤버로 영입 (2) 많은 밀레니엄 및 Z세대의 채용 및 영입 (3) 민첩성 (4) 은행원 대신 차별화된 재능이 있는 인재 영입(프로그래머ㆍ디자이너ㆍ데이터사이언티스트ㆍ딥러닝 전문가 등) (5) 모든 것을 자체적으로 구축하려고 하지 말고, 인공지능(AI)ㆍ블록체인 등의 적극 도입 기술이 먼저고 뱅킹이 그 다음인 세상이 왔다. 말로만 디지털금융은 외치고 있는 것은 아니었는지 금융권도 자기 반성을 해 볼 시간이다. 한대훈 SK증권 애널리스트, 『넥스트 파이낸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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