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

검색

[정순형]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vs 이더리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이더리움, 블록체인

[철학자의 탈중앙화 잡설] 최근 로더베이크 페트람의 『세계 최초의 증권거래소』라는 책을 읽었다. 책을 읽으면서 약 400년 전 상업이 융성했던 네덜란드의 증권 시장과 현재 진행형인 지금의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이 글은 그 닮은 점 몇 가지를 이야기하는 글이다. #①공모(Public Offering) 임진왜란 이후 정확히 10년 뒤인 1602년 8월 31일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에서는 주식회사 공모(Public Offering)가 자정을 기점으로 마감됐다. 이 공모를 통해 1143명이 청약을 해 초대 주주가 됐고, 367만4945길더(길더는 당시 네덜란드의 화폐 단위, 367만길더는 지금 시세로 약 1300억원)가 약정됐다. 역사상 최초의 불특정 다수 대상 자본조달 주식회사인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2014년 9월, 두 달 전 열렸던 독일과 아르헨티나가 붙었던 월드컵 결승의 열기가 아직 식지도 않았을 무렵, 스위스 추크 시간 기준 9월 2일 자정을 기점으로 약 42일간 진행된 이더리움의 공개토큰공모(Initial Coin Offering, ICO)에는 약 6670명(사실 계정의 숫자)이 참여하여 약 3만 비트코인이 투자됐다. 이는 당시 비트코인 가격으로 약 200억원에 해당되는 금액이었으며, 당시에는 온라인으로 이뤄진 크라우드펀딩 역사상 두 번째로 큰 규모였다. 1이더리움의 공모가는 0.31달러 수준이었다. #②공모방식 동인도회사의 공모과정은 다음과 같았다. 투자자는 동인도회사의 설립자 중 한 명인 반 네스라는 암스테르담 상인의 집에 찾아가서 투자의사를 밝힌다. 여기서 투자자는 참관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서기에게 요청하여 두터운 양장본으로 만들어진 장부(book)에 본인의 이름과 청약을 원하는 금액을 적는다. 예를 들면 “홍길동, 50길더”라고 적는 것이다. 당시에는 증표 형태의 주식 혹은 증권 개념은 없었다. 그저 장부를 통해 투자자들의 투자금액에 비례하여 지분(share)을 배정하는 방식이었다. 이더리움의 공모 과정은 다음과 같았다. 투자자들은 비트코인을 지불해야 했으며, 지정된 날짜까지 36PrZ1KHYMpqSyAQXSG8VwbUiq2EogxLo2이라는 계정으로 비트코인을 전송하면 됐다. 투자자들은 코인베이스 거래소의 계정을 이용하거나, 비탈릭 부테린(이더리움 창립자)이 직접 만든 프로그램을 통해서 이더리움 공모에 참여할 수 있었다. 이렇게 참여한 계정들은 이더리움 블록체인이 시작할 때 ‘계정명, 이더리움 개수’ 형태로 기록됐다. #③비즈니스 모델 동인도회사의 비즈니스 모델은 단순했다. 1)배를 만든다→2)무역을 한다→3)교역품을 판다→4)이익을 나눈다. 대항해시대였고, 항해를 나간 배가 교역에 성공해 돌아오면 투자금이 2~3배로 불어나는 일은 흔했다. 다만, 이러한 투자는 좁은 지역단위의 상인연합 혹은 혈연으로 엮인 관계에서만 형성됐다. 반면 동인도회사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투자가 이뤄졌다. 재밌는 점은 동인도회사의 투자금이 성공적으로 조달되긴 했지만, 초기에 많은 부분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떤 배를 몇 척을 만들지, 어떠한 상품을 교역할지와 같은 구체적인 사업계획은 아예 없었다. 일단 지분을 팔아서 자본만 조달한 상태였다. 그리고 이 사업은 실패할 수도 있었다. 만약 항해를 나간 배가 난파를 당하거나 교역을 성공적으로 하지 못할 경우 투자금을 잃을 가능성도 있었다. 이더리움의 용도는 단순했다. 1)이더리움 플랫폼에 많은 디앱(DApp)이 생겨난다→2)디앱을 쓰기 위해서는 이더리움을 지불해야 한다→3)이더리움의 수요가 많아진다→4) 이더리움의 가격이 오른다. 이더리움도 초기의 동인도회사와 비슷하게 많은 부분이 정해지지 않았었다. 프로젝트에는 백서 및 황서 등 2편의 논문과 4단계로 이루어진 개발 계획 정도만이 있었다. 일단 아이디어만 팔아 자본을 조달한 것이다. 물론 이 사업도 실패할 수 있었다. 만약 개발이 성공적으로 이뤄지지 못해서 이더리움이 런칭하지 못하거나, 런칭한다고 하더라도 이더리움 플랫폼이 많은 디앱과 유저들을 유치하지 못하면 투자금을 잃을 가능성도 있었다. #④거래의 시작 공모 후 약 6개월 뒤 청약에 참여해 3000길더어치의 지분을 가지고 있던 얀 알레츠라는 주주는 본인의 동인도회사 지분을 3195길더에 팔았다. 알레츠는 6개월간 약 6.5%의 수익을 봤다. 약 5년 뒤에는 가격이 2배로, 7년 뒤에는 4배로 뛰어올랐다. 아직 무역선이 출발도 하지 않았을 때였다. 이더리움의 장부(첫 번째 블록)는 공모가 끝난 후 약 1년 뒤인 2015년 7월 30일에 시작됐다. 8월 7일까지 일주일 동안 4만6146개의 빈 블록만 생성되다가 4만6147번째 블록에서 첫 번째 트랜잭션이 생성된다. 0xa1.. 이라는 계정에서 0x5d.. 라는 계정으로 0.000000000000031337이더를 전송하는 거래였으며, 거래 수수료로 1.05이더리움을 지불했다. 이 거래가 사고파는 거래였는지, 아니면 단순 테스트 거래였는지는 알 수 없다. #⑤매각(거래) 절차 지분을 매각하기 위한 행정절차는 다음과 같았다. 지분을 사려는 사람과 팔고자 하는 사람은 동인도회사 사무실의 회계담당자를 만나야 한다. 회계담당자는 원장(ledger)을 수정한다. 2명의 이사가 이를 확인한다(이 원부는 1628년부터 1798년 회사가 문을 닫을 때까지의 모든 기록이 아직까지도 남아있다). 회계장부 담당자는 지분 양도 때마다 60센트의 수수료를 받았고, 사는 사람은 거래 기록의 사본을 받아갔다. 이때 인지세로 1.2길더를 더 지불해야 했다. 이더리움의 소유권을 변경하기 위한 절차는 다음과 같다. 이더리움을 주려고 하는 사람은 ▲받는 사람의 계정 정보 ▲수수료 ▲보내고자 하는 금액 정보를 포함시켜 본인 계정(공개키와 개인키)의 서명값을 포함한 거래 데이터(Transaction)를 만든다. 이 거래 데이터를 이더리움 네트워크에 뿌려주면 수백, 수천으로 이루어진 이더리움 채굴자(클라이언트) 네트워크에서 수수료를 감안해 해당 트랜잭션을 다음 블록에 포함시켜 준다. 수수료를 많이 내면 빨리 포함되고, 수수료를 적게 내면 늦게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동인도회사의 장부와 비교했을 때, 이더리움 시스템의 회계담당자는 채굴자들이며, 이를 감시하는 2명의 이사는 필요 없다. 왜냐하면, 작업증명(Proof of Work) 알고리즘을 거치는 과정에서 잘못된 데이터는 애초에 장부에 포함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⑥장부조작 vs DAO 공격 바렌트 람프는 동인도회사의 회계장부 책임자였다. 명의 이전 신청자가 많은 날에 람프의 방에는 서명을 하기 위해 하루종일 동인도회사 이사들이 들락거렸다. 람프는 일을 꼼꼼하게 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이사들은 장부 내용을 확인도 하지 않은 채 서명만 하고 돌아갔다. 일이 반복되다 보니 실질적으로 람프 혼자 이 회계 장부를 책임지게 됐다. 어느 날 이 사무실에 한스 바우어라는 사람이 찾아왔다. 바우어는 람프에게 위험한 제안을 했다. 본인의 계정에서 빠져나가는 주식을 차감하지 않고 지분을 계속 만들어내서 큰 돈을 벌자는 것이었다. 람프는 이 제안을 받아들였고, 이들은 두 달간 약 3만3000길더에 해당되는 유령 지분을 만들어 팔았다(당시 암스테르담 운하 전망의 좋은 집 1채 가격이 2000길더 정도였다). 피해자가 생겼고, 9년간 3번의 재판이 있었다. 1심과 2심에서는 동인도회사의 이사들이 피해금액을 갚는 판결이 나왔지만, 3심에서 재판부가 이사들의 편을 들어줬다. 이더리움은 론칭 후 1년간 순항을 계속하다가, 2016년 4월 말 이더리움 기반의 더 다오(The Dao) 프로젝트로 분기점을 맞는다. 이 프로젝트는 이더리움을 투자금으로 모아서 이더리움 기반의 다른 프로젝트에 투자할 수 있는, 일종의 블록체인판 벤처캐피털 펀드 개념이었다. 당시에 더 다오 펀드에 2000억원에 해당하는 투자금이 모였다. 사람들은 다오 펀드가 만들어내고 지원할 수많은 이더리움 기반 프로젝트들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차있었다. 그런데 해당 펀드를 관리하는 프로그램 코드(스마트 콘트랙트)에는 하자가 있었다. 2016년 6월 17일, 해커는 이 하자를 이용해 펀드에 공격을 가했다. 해당 결과로 이 펀드 금액의 1/3에 해당하는 750억원 가량이 도난됐다. 2016년 7월 20일 이더리움 커뮤니티는 해커의 트랜잭션을 취소하는 하드포크를 단행해 해커의 공격을 모두 취소했다. 다만, 해당 업그레이드(하드포크)는 많은 찬반논란을 낳았고, 결국 이더리움 장부는 2개로 쪼개져 이더리움과 이더리움 클래식으로 나뉘게 된다. 물론 동인도회사의 장부조작과 이더리움의 다오 공격은 조금 다른 측면이 있다. 동인도회사의 관점에서 재서술하면, 직접적인 장부조작이라기보다는 동인도회사 지분을 대상으로 엄청난 규모의 사기사건이 발생한 것과 비슷하다. 이때 이더리움 하드포크의 경우, 동인도회사의 이사들이 해당 거래기록을 취소하는 장부수정을 하게 된 것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2개로 쪼개진 이더리움은 마치 동인도회사의 장부 거래기록을 취소하는 반대론자들이 기존 장부를 복사해서 새로운 ‘동인도회사2’를 세운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⑦새로운 시대, 새로운 기술, 새로운 기법 네덜란드의 주식회사 개념은 영국 동인도회사에 비해 약 10년 정도 앞선 첨단 시스템이었다. 또한, 네덜란드인들은 장부 거래의 불편함을 극복하기 위해 선도거래 등 첨단 금융기법 등을 활용했다. 이러한 기법들은 이 거래에 참여하는 상인들 외에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이렇게 만들어진 기법들은 근현대 자본주의 시스템의 핵심으로 자리 잡아 21세기를 견인하고 있다. 비트코인이 만들어진 지 10년이 지났고, 지난 10년간 첨단 암호 기술과 금융기법들이 암호화폐 커뮤니티에서 만들어졌다. 물론 사건사고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 시스템은 더욱 고도로 진화하고 있으며, 동시에 큰 부가가치를 낳고 있다. 지금의 이더리움과 같은 블록체인이 과거 동인도회사가 만들어냈던 사업(bisinness)의 역사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기대해 볼 일이다. 정순형 온더(Onther) 대표

조인디 logo
j o i n
d

Article Title

  • J loading image
  • O loading image
  • I loading image
  • N loading image
  • D loading image

RE:C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