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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커] 스팀 하드포크 이후, 탈중앙화를 다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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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커’s Crypto Story] 이른바 ‘하이브 하드포크’가 스팀체인에서 일어난 지 2달이 넘었습니다. 지난 2월 저스틴 선의 스팀잇 인수 이후 구 증인들이 반발하는 과정에서 표면적인 갈등이 시작됐죠. 당시 저스틴 선이 이렇다 할 독선적 행동을 하지 않았는데도 구 증인이 스팀잇 계정 지분을 동결하고, 투표권을 선제적으로 제한하는 소프트포크를 단행하면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됐습니다. 물론 모든 구 증인이 만장일치로 동결에 찬성한 것은 아닙니다. 전체 증인 20명 중 한국 스팀잇 증인이었던 clayop(조재우 교수)와 다른 1명의 증인은 해당 안건에 반대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과반수 동의로 동결이 이뤄지게 됐습니다. 하드포크 이후에는 어땠을까요. 우선 대부분의 구 증인들이 하이브에서 증인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부터 저스틴 선의 인수에 불순한 의도가 있다고 염려한 구 증인들이 만든 프로젝트가 하이브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구 증인이 떠난 자리에 공백이 생긴 스팀에서는 새로운 증인이 대거 선출됩니다. 이때 구 증인의 독단적인 계정 동결에 반발했던 한국 스팀 커뮤니티에서도 여러 증인들이 배출됐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지난 5월 인터뷰에 따르면 하드포크 이후에도 구 증인(현 하이브 증인)의 보상풀 착복 행위(파밍)와 협박이 스팀잇 커뮤니티에서 계속됐다고 합니다. 유저들이 스팀잇을 사용할 수 없도록 무한 댓글 공작을 했다고도 밝혔습니다. 물론 자신이 인수한 계정이 동결 당하자 저스틴 선이 했던 행동도 최선이라고 보기엔 어렵습니다. 거래소 자금과 트론 계정을 투입해 구 증인들을 모두 갈아엎는 하드포크를 단행했던 것이죠. 이후 거래소들은 상황을 잘 모르고 섣불리 트론 계정에 투표했다며 보팅을 철회했습니다. 저스틴 선 역시 스팀 커뮤니티 구성원과 소통을 시도하며 타협안을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서로간 갈등의 골이 깊어져 적대적 하드포크는 단행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에피소드1: 셀프보팅 오늘 칼럼은 지난 칼럼과 조금 다른 관점으로 접근할까 합니다. 지난 칼럼에선 “저스틴 선의 등장에 상당수 커뮤니티 구성원이 되레 그를 반겼다”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그런 상황을 부패한 원로원(구 증인)에게 칼을 겨누는 카이사르(저스틴 선)에 대해 민중(커뮤니티 구성원)들이 환호하는 모습으로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다소 논리적 비약도 있고 거창한 비유였지만, 일시적으로 커뮤니티 구성원이 저스틴 선을 오히려 반겼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기존 체제가 만족스러웠다면 굳이 저스틴 선을 환호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탈중앙화 관점에서 저스틴 선의 이미지가 좋지 않은 건 사실이니까요. 그러다 보니 당시 문제의 근원을 찾을 때도 인물 중심으로 분석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시스템적인 관점에서 문제를 찾으면 상황이 좀 더 복잡해집니다. 저스틴 선 인수 이전 스팀잇 커뮤니티 시스템에서 화두가 됐던 주제 중 하나는 셀프보팅이었습니다. 페이스북으로 치면 자신의 글이나 댓글에 스스로 ‘좋아요’를 누르는 행위를 셀프보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차이점이라면 페이스북은 ‘좋아요’를 누른다고 돈이 되진 않지만, 스팀잇의 셀프보팅은 보유 스팀 수량에 따라 큰 돈으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만약 스팀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자신의 글에 셀프보팅을 최대치(풀보팅)로 한다면 한번에 큰 보상액을 챙길 가능성도 생겨나게 되겠죠. 그래도 자유시장 경제를 기반으로 한 탈중앙 커뮤니티에서 건전하게 등록된 자신의 글에 셀프보팅하는 건 그리 큰 문제가 아닙니다. 진짜 문제가 됐던 부분은 성의 없는 글에 대한 셀프보팅이었습니다. 거액의 스팀을 가진 고래가 구체적 내용없이 사진 한 장만 올려놓고 셀프보팅을 지속하자, 한때 커뮤니티에서 큰 논란이 일었습니다. 해외 스팀 커뮤니티에선 댓글에 점 하나만 찍어놓고 셀프풀보팅을 자행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에피소드2: 보팅봇과 보팅풀 셀프보팅이 화두가 됐던 시기는 2017년이었습니다. 스팀잇 내 활성 이용자 수가 많았던 때였죠. 위에 나온 사례가 지속적으로 벌어지면 커뮤니티 내에서 자정작용이 일어나곤 했습니다. 심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다운보팅을 감행해 셀프보팅 당사자의 보상액을 다른 구성원들이 차단시키기도 했습니다. 다운보팅은 페이스북의 ‘싫어요’와 유사한 개념이지만, 보상을 보팅액수만큼 차감할 수 있다는 점에서 훨씬 강력한 물리적 수단이었습니다. 때론 커뮤니티 내에서 다운보팅 전쟁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2018년 이후 스팀 가격 하락과 서비스 침체가 겹치면서 사용자 수는 점차 줄어들게 됩니다. 시스템 측면에서 이 침체를 가속화하는데 기여했던 존재는 보팅봇과 보팅풀이었습니다. 이들은 2018년 이전부터 운영됐으나, 2018년 이후 이를 견제할 사용자가 점점 줄어들자 부정적 면모를 본격적으로 드러내게 됩니다. 보팅봇은 본래 수동 보팅이 여의치 않은 사람들이 믿을만한 게시자에게 자동보팅을 하기 위한 목적으로 생겨난 존재입니다. 스팀잇은 보팅 참여자에게도 일정액의 보상을 약속했기 때문에 보팅봇을 잘만 쓰면 게시자와 보터가 윈윈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감시자가 줄어들자 악의적인 의도를 가진 소수 이용자가 무수한 부계정을 이용해 보팅봇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주어진 제도 안에서 탈중앙 생태계가 건전하게 유지되려면 이러한 행위를 즉각적으로 차단할 감시자가 충분히 있어야 했는데, 이때 당시엔 그렇지 못했습니다. 보팅풀 역시 생태계 혼란의 주범 중 하나로 지목됐습니다. 보팅풀은 스팀 물량을 소액으로 가지고 있는 참여자들이 하나의 공통된 보팅 계정(보팅풀 계정)에 임대하는 시스템을 의미합니다. 이후 보팅풀 계정은 임대가 확인된 개인 참여자에게 자동보팅을 시작합니다. 이렇게 하면 보팅풀 개인 참여자는 일종의 임대수익을 얻을 수 있었고, 보팅풀 계정도 보팅 수익을 획득할 수 있었습니다. 커뮤니티가 활황일 때는 이러한 제도가 지극히 시장친화적인 방식이고, 보팅풀-개인 참여자가 윈윈할 수 있는 시스템인 것으로 인식됐습니다. 그러나 보팅풀 계정이 비대해질수록 SNS의 본질인 소통이 없어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글 쓰는 목적이 소통이 아니라, 오로지 수익에 이용된다는 의견이었습니다. 더 큰 문제는 보팅풀 계정이 엉뚱한 곳에 사용될 수 있다는 데 있었습니다. 보팅풀 계정이 자신에게 임대해준 계정에 대해 보팅하는 목적 외의 용도로 쓰여지면 큰 파급효과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막대한 보팅량으로 커뮤니티에 영향력을 줄 수 있는 보팅풀 계정이 보복을 목적으로 다운보팅을 행사하기라도 한다면, 큰 일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탈중앙 감시체제가 충분히 작동되는 환경이더라도, 개인 참여자의 스팀 물량은 보팅풀 계정에 영향을 줄 정도로 크지 않다는 점에서 제어 장치 역시 마땅히 없었던 셈입니다. 다행히 “그런 일이 일어나면 보팅풀 계정도 마찬가지로 몰락한다”는 논리로 인해 극단적인 상황이 실제로 펼쳐지지는 않았지만요. #에필로그: 구 증인, 블록트레이드 어떤 문제는 하드포크 이후에서야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지난 5월 인터뷰에서 필자는 구 증인 1위였던 블록트레이드(blocktrades)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인터뷰이 측에 따르면 블록트레이드는 일종의 개발자 기금이었던 SPS를 구 증인들의 보상 창구로 이용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개발비 등의 명목으로 3년간 받은 스팀이 2500만 개 이상이었다고 합니다. 또한 블록트레이드는 부계정인 darthknight를 이용해 구 증인 투표 조작에 기여했다고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이때 darthknight가 300만 스팀이 넘는 스팀파워업(파워업 액수가 커질수록 증인 투표 영향력이 커짐)을 진행했는데, 거래소 메모를 확인한 결과 블록트레이드의 계정으로 확인됐다는 것입니다. 다만 구 증인으로 직접 활동한 경력이 있는 조재우 교수는 해당 이슈에 대해 “블록트레이드의 부계정 사건은 메모라는 증거가 있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SPS의 기금이 사적 창구로 이용됐다는 해석에 대해서는 조심스럽다. SPS와 같은 제도는 대시 등의 다른 프로젝트에서도 도입이 돼 있는 사례다”라고 설명했습니다. #탈중앙화는 가혹하다 스팀잇이 커뮤니티 구성원들에게 남긴 숙제는 생각보다 가혹합니다. 처음엔 혁신에 대한 가능성을 보고 쉽게 들어왔지만, 드러난 문제들은 결코 간단한 것들이 아니었습니다. 분명 앞으로도 쉽게 해결될 문제는 아닐 겁니다. 또한 탈중앙화는 책임소재와 관련한 문제의식을 우리에게 던지기도 합니다. 과연 일련의 스팀 커뮤니티 사태에서 참여자들은 책임을 누구에게 묻고 있을까요. 당연히 하드포크 이후에도 스팀잇에 남아있는 세력들은 현 하이브 세력들을 비판합니다. 그들이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 생태계를 이렇게 망쳐놨다고 말입니다. 반면 하이브 세력은 저스틴 선이 들어오는 바람에 잘 운영되던 탈중앙화 가치가 훼손됐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런 체제에 동의하는 사람도 한 패라는 이유로 하이브 에어드랍에서 이들을 제외시키기도 했죠. 한편 양자 사이의 입장에 있는 조재우 교수는 “운영 자체는 스팀잇 재단이 담당한다. 구 증인이 방만하게 운영했다는 주장은 논점이 조금 어긋난 것 같다. 네트워크 운영 측면이나 기술적 코드 리뷰 측면에서 보면 구 증인들은 큰 문제가 없었다”고 평가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아예 세력과 직접적 관계가 없는 개인 참여자들은 평소 이해관계에 맞는 곳으로 양분된 모습입니다. 서양 쪽에서는 하이브로 건너간 개인 참여자들의 비율도 꽤 많은 편입니다. 어느 커뮤니티 소속이냐에 따라 책임소재가 달라지는 건 당연한 일이겠죠. 한마디로 저마다 책임을 다른 곳에 묻고 있는 상황입니다. 애초부터 탈중앙화를 표방했는데 네드 스캇으로 대표되는 재단에게 운영 책임을 전적으로 묻자니 그것도 이상하고, 개인 참여자에게 탓을 돌리자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난 몇 년간 얻은 게 없습니다. 하이브 증인은 어떨까요. 현 스팀잇 커뮤니티 잔존 세력에게 하이브 증인은 적폐였습니다. 이에 대한 증거도 제시됐죠. 서구권에서 ‘탈중앙화는 옳다’는 논리로 저스틴 선은 무조건 악이고 하이브는 선이라는 프레임이 만들어졌던 것도 어느정도 사실입니다. 다만 조재우 교수의 말처럼 증인의 역할이 운영이 아니라 기술적 측면에 있는 것이라면, 블록트레이드를 제외한 평범한 구 증인이 모든 부분을 다 잘못했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되레 기술적 측면에선 스팀잇 커뮤니티의 실책이 더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하드포크를 했는데도 하이브 측 세력이 지속적인 공격을 해오는 데다가, 현 스팀잇 증인은 증인이 생계수단이 아닌 사람도 많기 때문이겠죠. 그렇다고 해도 이런 이유들이 현 스팀잇 증인에게 면죄부가 되지는 않을 겁니다. 문제가 장기화될수록 여론은 더 부정적으로 흐를 가능성이 있습니다. 저스틴 선 역시 워낙 커뮤니티가 침체돼 있다 보니 일단 환영 받았지만, 앞으로의 행보에 따라 평가는 얼마든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의미있는 탈중앙화를 생각해야 하는 이유 여전히 뚜렷한 답이 보이지 않습니다. 지금 생태계가 이렇게 된 것에 어느 한쪽의 책임이 명확하게 있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네드·저스틴 선·구 증인·현 증인·개인 참여자. 그도 아니면 필자처럼 한때는 개인 참여자였지만, 어떻게 보면 지금은 그 책임에서 도망친 떠나간 사람들의 잘못인 걸까요. 개인적으론 그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커뮤니티에서 획득했던 스팀을 일부러 팔고 있지 않지만, 그렇다고 필자와 같은 사람들을 "탈중앙화의 책임을 버리고 도망쳤다"고 무조건 원망하기도 어려울 겁니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대부분'의 개인 참여자는 노력 대비 금전적으로 얻은 게 거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스팀 하드포크를 비롯한 탈중앙 프로젝트의 가혹함을 겪고 이제 탈중앙화는 어렵겠다고 말합니다. 물론 모든 부분을 탈중앙화할 순 없습니다. 중앙화를 유지해야 더 효율적인 분야들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단순 코인 가격 이외에도 탈중앙화가 빛났던 부분 역시 존재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스팀잇에서도 탈중앙화의 순기능으로 많은 소그룹이 유연하게 결성되고, 보상과 견제가 즉각적으로 이뤄졌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쉽지 않겠지만, 한 스팀잇 커뮤니티 관계자는 "고질적 문제 몇 가지가 해결되면 커뮤니티가 예전처럼 선순환 할 것"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이를 위해 앞으로도 증인 중복 투표 등의 남은 문제점을 계속해서 고쳐나가겠다고 전했습니다. 여기에 조재우 교수는 “스팀과 하이브의 문제를 탈중앙화 자체까지 확장하는 건 확대해석으로 보인다. 다만 DPoS(위임지분증명)의 분권화에 대해서는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고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스팀 바깥 영역에선 EOS의 보이스가 SNS 탈중앙화를 다시 꿈꾸고 있습니다. 이미 프로젝트를 여러 번 갈아치운 댄 라리머를 좋지 않게 바라보는 시선도 많겠지만, 나름 승부수를 건 프로젝트라고 생각합니다. 관계자의 표현에 따르면 보이스는 기존 스팀잇에서 발생했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토큰 소각 개념을 적용한다고 합니다. 스팀잇은 보팅을 하면 보팅 파워가 줄어들 뿐, 보유 수량 자체가 사라지진 않았습니다. 반면 보이스는 보팅(보이스잇)을 누르면 보유 수량이 깎이는 구조라고 합니다. 이에 대한 초기 진입장벽을 없애기 위해 보이스 유저들이 로그인을 하면 매일 기본소득을 주는 시스템도 구축 중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여전히 불완전하지만 이처럼 시도는 계속해서 이뤄지고 있습니다. 다소 느릴지라도, 내가 나를 온전히 가져갈 수 있는 탈중앙화 고유의 옷에는 어떤 것이 있을지 다시 진지하게 고민해 볼 때입니다. ※필자는 2017년부터 스팀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박상혁 기자 park.sanghy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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