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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형] 부루마블로 보는 인플레이션과 암호화폐

부루마블, 암호화폐, 인플레이션, 중앙은행

[철학자의 탈중앙화 잡설] 부루마블이라는 보드게임이 있다. 이 게임의 참가자들은 주사위를 순서대로 던지며, 사각형의 영토(도시)를 차지하고, 상대방의 말이 이 영토를 지날 때마다 통행료를 걷는다. 승자가 나오기 위해서는 보유한 ‘게임 현금’을 모두 소모해 더 이상 현금을 낼 수 없는 사람이 나와야 한다. 곧, 많은 영토를 차지하여 통행료를 많이 걷으면 게임의 승자가 될 가능성이 커진다. 승리를 위해서는 보유한 현금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부루마블 속 독립 금융 기관, ‘씨앗은행’ 이 게임에서 재미있는 점은 말이 사각형의 영토를 한 바퀴 돌 때마다 ‘월급’으로 불리는 일정한 현금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현금의 출처는 ‘씨앗은행’이라고 불리는, 참가자가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독립된 기관으로부터 발생한다. 씨앗은행이 독립돼 있다고 표현한 이유는 따로 있다. 이 은행으로부터 돈을 꺼내는 방법은 말을 움직여 게임판의 영토를 한 바퀴 도는 방법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참가한 플레이어 누구도 이 씨앗은행에 영향력을 끼쳐 임의로 돈을 꺼낼 수 없다. 월급의 양은 게임 규칙으로 이미 정해져 있다. 부루마블 현금 20만원 정도의 규모로, 도시(영토) 1개를 지날 때 평균적으로 내는 금액보다 약간 적다(도쿄의 통행료는 32만원, 파리는 30만원, 마드리드는 28만원 정도 된다). 물론 이 월급 수준으로 게임을 압도 하기는 어렵다. 수치가 최적화돼 있는 셈이다. #씨앗은행 월급을 100배로 올린다면 여기서 만약 게임의 룰을 바꿔 한 바퀴를 돌 때마다 현금 20만원이 아닌 2000만원을 받도록 하면 어떻게 될까. 월급이 100배 커졌기 때문에 한 바퀴를 돌 경우, 약 100개의 도시에 통행료를 낼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이 게임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현금을 소모시켜 지불 불능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이렇게 후한 통행료를 계속 나눠줄 경우 이 게임은 영원히 끝나지 않게 된다. 주사위를 던져 도시를 지날 때마다 지불하는 현금 지출보다 월급을 통해 늘어나는 현금이 압도적으로 크기 때문이다. 월급이 100배 늘어난 상태에서 게임이 무한대로 길어지지 않고 일정 시간 내에 끝나게 하기 위해서는 결국 도시의 통행료를 늘리는 방법밖에 없다. 기존 도시의 통행료를 동일하게 100배 늘리면(파리 30만원→3000만원) 다시 게임의 균형이 맞춰지면서 월급의 실질적 영향력이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게 된다. #부루마블을 현실에 대입한다면 여기서 씨앗은행을 각국의 ‘중앙은행’으로, 참가자들을 ‘경제 주체’로, 부루마블 현금을 달러와 같은 ‘불태환 화폐’로, 통행료를 ‘물가’로 바꾸면 이 게임은 현실을 매우 직관적이고 노골적으로 묘사한 꼴이 된다. 만약 중앙은행이 갑작스럽게 많은 돈을 만들어 시장에 공급하게 되면, 돈의 값이 떨어지게 되면서(인플레이션) 시장 경제가 만들어진 규칙대로 움직이지 않게(게임이 끝나지 않게) 된다. 그러나 이 시장은 이 극악의 상황에서 자생력을 갖추기 위해 물가를 올린다. 만약 이 물가가 너무도 빠른 속도로 급격하게 오른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는 역사에서 종종 이러한 현실을 마주했다. 조선후기에 발행된 당백전과 짐바브웨 달러, 그리고 독일의 마르크화 폭락과 같은 하이퍼 인플레이션이 바로 그것이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부루마블의 도시 통행료가 급격하게 늘어나는 과정에서 게임이 마비되는 원인은 정해진 월급을 누군가가 자의적으로 100배 이상 올렸기 때문이다. 하이퍼 인플레이션의 원인도 같다. 하이퍼 인플레이션 상황에서 화폐가 휴지조각이 되는 이유도 각 단위 경제에 화폐 발행권을 가진 기관이 적극 개입해 의도적으로 화폐 발행을 늘리기 때문이다. #씨앗은행과 중앙은행의 차이 작업 증명(Proof of Work)을 하는 비트코인은 어떨까. 비트코인 발행에 대한 모든 사항은 소스코드로 정해져 있으며, 이 규칙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합의 과정(내 컴퓨터를 이용해 연산의 일부를 부담하는 행위, 채굴 등)에 참여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룰에 동의하지 못하거나 거짓된 규칙을 만들어 낼 경우, 비트코인 프로토콜은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배제되도록 인센티브 구조가 갖춰져 있다. 지분 증명(Proof of Stake) 역시 마찬가지다. 이더리움2.0의 경우, 이미 테스트넷에만 2만개 노드가 최소한의 토큰 지분을 가지고 참가한다. 작업증명과 지분증명의 합의 알고리즘을 가지고 있는 암호화폐 시스템은 규칙이 정해져 있다. 바뀔 수 없는 부루마블의 씨앗은행과 매우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한 바퀴를 돌면 20만원만 가져가야 한다. 30만원 혹은 2000만원은 가져갈 수 없다. 오히려 기존의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화폐는 이 규칙을 임의로 조절한다(어긴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경제위기를 막기 위해 각국의 중앙정부는 천문학적인 돈을 시장에 살포하고 있다. 경제위기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는 목적과 의도 및 효과는 분명해 보이지만, 과연 중장기적으로도 이와 같은 방법이 적절할까. 미국 연방준비위원회의 총 자산 증가. 지난 6개월간 늘어난 연준의 자산이 지난 10년간 늘어난 양보다 많다. 나아가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현금과 경제 시스템은 안전할까. 부루마블의 그것처럼, 각종 지원금을 통해서 갑작스럽게 늘어난 ‘현금’을 마냥 좋아할 수 있을까. 늘어난 현금만큼 급격한 인플레이션을 겪지는 않을까. 인플레이션이 없다고 하더라도, 이 세계에 규칙은 내가 이전까지 해오던 정상적인 경제활동과 같을까.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 어떤 자산이 내 경제적 권리를 보장해 줄 수 있을까. 고민해볼 일이다. 정순형 온더(Onther)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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