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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형] 조주빈의 코인을 강제로 몰수할 수 없는 이유

정순형, 조주빈, n번방, 인클로저

[철학자의 탈중앙화 잡설] 신문지를 42번 접으면 지구에서 달까지 간다는 이야기를 들어봤을 것이다. 접으면 두께가 2배가 되니 2의 42제곱(2^42)을 했다는 의미와 같다. 그럼 신문지를 256번 접은 수치인 2의 256제곱(2^256) 얼마나 될까. 무려 10의 78자리수가 된다. 지구를 모래로 가득 채우는 과정을 10의 40제곱(10^40)번 반복해도 남을 정도의 수치에 해당된다. #도어락 비밀번호와 암호화폐 소프트웨어의 차이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도어락은 보통 4~6자리수로 이뤄져 있다. 4자리만 돼도 1만 개의 숫자 조합이 생기고, 5초에 하나씩 입력해도 1주일이 넘게 걸린다. 만약 도어락 비밀번호가 78자리라고 가정하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이럴 경우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모르는 사람이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는 확률은 우주에 모래를 가득 채운 뒤에 알갱이 하나를 집어서 섞은 다음 그 모래 알갱이를 다시 찾아낼 확률과 같아진다. 비트코인ㆍ이더리움과 같은 암호화폐 계좌 생성 방식도 비슷하다. 암호화폐 지갑 소프트웨어는 0부터 2^256(뒤에 0이 약 78개 정도 붙어있는 수) 사이에 있는 숫자 하나를 택한다. 그리고 이 숫자를 바탕으로 계좌을 만든다. 암호화폐 소프트웨어는 계좌 생성 과정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는다. 계산을 수행했던 컴퓨터만 이 값을 알고 있으며, 컴퓨터를 재시작하면 이 과정은 사라진다. 다만, 이렇게 만들어진 78자리의 비밀 번호를 잘 적어뒀다면 언제든 만든 계정에 문을 열고 들어가듯 접근해서 암호화폐를 꺼내고 넣을 수 있다. #한번 분실하면 찾을 수 없는 암호화폐 비밀번호 만약 이 78자리의 비밀번호를 적어둔 파일이나 노트를 잃어버리면 어떻게 될까. 아쉽지만 우주에서 모래알을 꺼내서 대조하듯 찾는 방법이 유일하다(무작위 랜덤 입력). 그런데 현존하는 가장 좋은 슈퍼컴퓨터를 동원해도 이 정도의 값을 반복적으로 모두 꺼내보기 위해서는 수조 년이 걸린다. 곧, 되찾을 방법이 없다. 종종 우리는 뉴스에서 많은 비트코인이 담긴 하드디스크를 버리는 바람에 되찾지 못했다는 기사들을 접한다. 엄밀히 말해서 잃어버린 것은 비트코인 그 자체라기보다는 이를 제어할 수 있는 비밀번호를 분실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도어락 비밀번호를 적어둔 메모장을 분실하는 바람에 집에 못 들어가고 있는 셈이다. 진짜 도어락이라면 부수고 들어가면 되지만, 블록체인은 1만개의 컴퓨터가 상호 의존적으로 얽혀있는 시스템이라, 어디를 부숴야 하는지 파악조차 힘들다. 비밀번호를 잊으면 영영 찾을 수 없다. #조주빈이 알려주지 않으면 찾을 방법이 없다 최근 사회적 이슈가 된 ‘n번방 사건’ 조주빈의 암호화폐 계정 15개를 알아낸 검찰이 이를 몰수 하려 했으나 조주빈이 키(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아 회수에 어려움이 있다는 뉴스가 나왔다. 검찰은 범죄수익보전청구를 했으나, 조주빈 본인이 먼저 암호키를 제공하지 않으면 이에 대한 강제집행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타인이 특정한 암호화폐 계정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78자리의 숫자를 맞춰야 하는데, 앞서 이야기 했던 것처럼 이는 우주에서 모래알을 건지는 것과 확률이 같기 때문이다. 키 없이 자물쇠(암호화폐 시스템 자체)를 부수는 것도 불가능하다. 비트코인과 같은 암호화폐는 분산 시스템으로 이루어져 있어 전 세계에 자생적인 서버 1만개가 그물처럼 얽힌 상태로 움직인다. 현실적으로 이를 동시에 일시적으로 접수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암호화폐, 디지털 버전 인클로저 운동 이처럼 블록체인이 만들어낸 암호화폐는 구조적으로 이 세상에 존재해던 어떤 법과 제도조차 따라갈 수 없는 절대적인 사유재산권을 기술적으로 보장해준다. 본인이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 어떠한 강제집행 수단으로도 뺏을 수 없고, 심지어 비밀번호를 분실하면 당사자도 접근이 불가능하다. 비트코인 이전의 모든 전자화폐는 이 ‘사유재산 헤게모니’를 지키지 못해 실패했다. 이전의 전자화폐는 모두 어느 정도의 공공영역에 있었기 때문에 어떠한 계기로든 이 시스템에 외부의 개입, 제도의 개입, 권력의 개입이 이뤄졌다. 그리고 이렇게 신뢰를 잃은 시스템은 결국 사용자들에게 외면받았다. 부는 늘어날수록 사유화를 좇는다. 사유재산이 잘 보장되지 않는 국가의 부자들이 사유재산을 보장하는 나라의 부동산을 사들이는 사례를 종종 들어본 적이 있겠다. 전자화폐도 마찬가지다. 디지털 세계의 부는 점점 늘어나는데, 이를 사유화 할 수 있는 수단은 매우 제한돼 있다. 그런 의미에서 비트코인은 21세기 디지털 인클로저 운동의 시작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마치 19세기 영국인이 공유지에 울타리를 쳐 그들의 재산을 보호받고자 했듯, 21세기 인터넷 노마드들은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을 통해 그들의 재산을 보호받고자 한다. 200년 전 인클로저 운동으로 영국은 사유재산 제도가 확실하게 자리 잡을 수 있게 됐다. 이는 노동생산성과 기술 발전으로 이어져 산업혁명의 밑거름이 됐다. 비트코인이 21세기에 촉발한 디지털 산업혁명은 과연 어떤 모습의 세상을 만들어낼까. 정순형 온더(Onther)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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