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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란] '미친 괴리율' 원유ETN에서 '가두리 펌핑'이 보인다

고란, 동학개미, 원유ETN 김치 프리미엄, 가두리펌핑

[고란의 어쩌다 투자] 동학개미운동의 열기가 여전히 뜨겁습니다. 식을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노동 소득만으로 자산을 불리던 동학 ‘개미’가 투자에 눈을 뜬 걸까요. ‘온리’ 삼성전자에서 이젠 다른 종목으로도 눈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최근 투자 행태를 보면 ‘동학’개미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합니다. 미국 주식도 직구로 대규모로 사들이고 있고, 주가가 떨어져야 수익이 나는 인버스 상품에도 투자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 정도면 바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까요. 유가 상승에 베팅하는 개인 투자자가 늘었습니다. 그것도 상승률의 두 배를 수익으로 올릴 수 있는 레버리지 상품에 매수세가 몰렸습니다. 매수세가 몰리자 국내에서만 유독 원유선물 레버리지 상품이 비싸게 거래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어떤지 익숙한 광경 아닌가요. 코인판에서 2017년말 벌어졌던 이른바 ‘김치 프리미엄’, 혹은 일부 거래소에서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가두리 펌핑’을 닮았습니다. 주식의 미래는 코인인 걸까요. #동학개미운동, 이전의 개미가 아니다 ‘동학개미운동은 해피엔딩일까?’. 4월 13일 유진투자증권의 투자전략 보고서 제목입니다. 질문에 대한 답은 그렇다, 입니다. 옛날의 개미가 아니라는 겁니다. 허재환 애널리스트는 이전과는 두 가지 점에서 개인이 달라졌다고 분석합니다. 하나는 ‘빚’내서 주식을 사지 않는다고 합니다. 가지고 있는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주식을 더 사는 걸 ‘신용 매수’라고 합니다. 주가가 오르면야 가진 돈보다 훨씬 더 큰 수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주가가 떨어지면 가진 돈 전부를 까먹을 수도 있습니다. 과거 개인들의 투자 열기가 달아올랐을 때는 신용융자 잔고가 급증했는데, 지금은 아니라고 합니다. 이렇게 투자 열기가 뜨거운데도 시가총액 대비 신용융자 잔고 비율은 평균에도 못 미칩니다. 다른 하나는 부동산 시장이 뜨겁지 않다는 점입니다. 저금리 시대, 시장에는 막대한 돈이 풀렸습니다. 막대한 유동성에도 부동산 시장은 과열은커녕, 되레 가라앉고 있습니다. 부동산 정보업체 부동산114에 따르면, 지난주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3주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습니다. 송파구와 서초구의 주간 하락률은 0.2%를 웃돕니다. 그래도 사자는 없어 급매 아니면 거래가 성사되지 않습니다. 거래량 절벽입니다. 이렇게 부동산에서 넘치던 자금이 주식시장으로 넘어온 건 아닐까요. 최선의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는 주식이라는 자산을 ‘스마트’하게 선택한 결과가 동학개미운동이 아닐까 합니다. #동학개미 맞아? 해외주식도, 인버스도 샀다 이름은 존재를 결정합니다. 어느 순간부터 관성적으로 ‘동학개미’라고 부르는데 과연 동학개미가 맞을까요.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개인들은 3월 2일부터 4월 8일까지 해외 주식을 약 5조4000억원 순매수했습니다. 같은 기간, 국내 주식시장에서는 약 17조9000억원을 순매수했습니다. 국내 시장에서 훨씬 많이 사긴 했지만, 해외 주식도 주가 폭락을 틈타 무섭게 사들였습니다. 주가가 떨어져야 수익이 나는 인버스ETF(상장지수펀드)도 순매수했습니다. 개인들은 코덱스(삼성)ㆍ타이거(미래에셋)ㆍ킨덱스(한국투자) 등 3개 인버스ETF를 같은 기간 약 2500억원 사들였습니다. ‘동학개미’라면 주식을 사들여 증시 방향을 상승 쪽으로 이끌어야 하는 게 아닐까요. 주가가 떨어져야 돈을 버는 인버스ETF를 샀다는 건 우리 편을 향해 총을 쏜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이쯤 되면 동학개미가 아니라, ‘스마트 개미’가 훨씬 더 적확한 표현이 아닐까요. #변종은 언제나 있다...불나방처럼 달려드는 원유ETN 투자자들 개인 투자자 전체를 놓고 보면 과거와 달리 스마트해진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변종은 언제나 있습니다. 과거에도 보통 개미들이 ‘뇌동매매’로 비싸게 사서 싸게 파는 ‘흑우’적 투자 패턴을 이어갈 때, 스마트한 개미는 돈을 벌었습니다. 지금은 개인 투자자 집단 전체로 보면 스마트하지만 곳곳에서 이상신호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곳이 원유ETN 시장입니다. ETN(상장지수증권, Exchange Traded Note)은 ETF의 증권사 버전입니다. 상품 구조는 똑같은데 하나는 펀드, 하나는 증권일 뿐입니다. ETF보다는 이름이 생소한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 ETN은 ETF에 비해 후발주자입니다. 투자자들을 유인하려면 뭔가 달라야 합니다. 그래서 증권사가 택한 상품 출시 전략은 레버리지입니다. 원유ETN은 원유선물 가격 움직임의 두 배로 수익률이 결정됩니다(국내 상장된 원유ETN은 2배 레버리지 상품만 있습니다). 예를 들어, 원유선물 가격이 100원에서 110원이 됐다면, 원유ETF도 110원이 되지만, 원유ETN은 120원이 됩니다. 반대로 원유선물이 90원으로 떨어졌다면, 원유ETF 가격도 90원으로 하락하지만, 원유ETN은 80원이 됩니다. 두 배 먹을 각오면 반토막도 각오하라는 거죠. 문제는 투자가 너무 몰렸다는 점입니다. 서부텍사스(WTI)원유가 종가 기준으로 30달러 밑으로 떨어진 3월 16일부터 한국거래소가 시장 개입을 예고하는 보도자료를 내기 전인 4월 7일까지 레버리지 2배 원유ETN 4개 상품에 대한 개인들의 순매수 규모는 약 3500억원에 이릅니다. 가장 투자자들이 몰린 삼성레버리지WTI원유선물ETN은 2000억원 가까이 사들였습니다. 지난해 같은 기간 개인들의 순매도(당시엔 매도가 더 많았습니다) 규모는 약 43억원에 불과합니다. #폭발하는 매수세에 가치와 가격이 달라졌다 파생상품의 가치는 기초자산의 가격에 따라 결정됩니다. 가치 산정의 기준이 되는 자산의 가격이 오르면 오른 만큼, 내리면 내린 만큼 파생상품 가치에 반영돼야 합니다. 원유선물 ETF나 ETN 모두 기본적으로 가치는 원유선물 가격에 따라 결정돼야 합니다. 여기서 파생상품에는 ‘가치’, 원유선물에는 ‘가격’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가치와 가격은 일치해야 합니다. 하지만 가치와는 별개로 가격은 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됩니다. 곧, 원유선물의 가격이 10% 오르면 레버리지 2배 원유선물ETN 가격도 20%가 올라야 합니다. 그렇게 설계됐다고 판매하는 상품이니까요. 문제는 시장에 사자는 사람이 너무 많거나 팔자는 사람이 너무 많으면 원유선물과는 다른 원유ETN 가격 흐름이 나타난다는 점입니다. 시장에서는 원유ETN의 가치와 가격을 같게 만들어주는 주체가 존재해야 합니다. 팔자는 사람이 너무 많으면 시장에서 사 주고, 사자는 사람이 너무 많으면 물량을 내다 팔아야 합니다. 이걸 전문용어로 유동성 공급자(LP)라고 합니다. 원유ETN의 유동성 공급자는 상품을 설계ㆍ발행한 증권사입니다. 매수가 너무 몰릴 경우에 대비해 증권사는 연초에 연간 ETN발행한도를 금융감독원에 신고합니다. 삼성증권과 신한금융투자는 올해 ETN 발행한도를 각각 1조원과 5000억원으로 잡았습니다. 증권사들이 한도 내에서 추가로 ETN을 찍어서 시장에 물량을 풀었지만, 그걸 모두 개인들이 사들였습니다. 3월 중순에 증권사가 발행할 수 있는 모든 물량이 소진됐습니다. 그나마 가격을 조절해 왔던 증권사의 매도 실탄이 바닥나면서 원유ETN 가격은 폭등합니다. 가치와 가격의 차이를 괴리율이라고 합니다. 8일 기준으로 삼성레버리지WTI원유선물ETN의 괴리율이 95%에 달합니다. 곧, 원유선물 가격이 100원인데, 레버리지ETN은 195원에 거래된다는 의미입니다. #가두리 펌핑과 닮았다...하지만, 주식에는 대안이 있다 한국거래소에서만 유독 원유가 비싸게 거래되는 현상, 어쩐지 코인러들에게는 익숙합니다. 2017년 말, 국내에서 비트코인 투자 수요가 급증하면서 글로벌 시세보다 최대 50% 이상 비싸게 거래됐던 시절이 떠오릅니다. 코인 시장에는 공인받은 유동성 공급자가 없습니다. 해외에 딱히 연고가 없는 개인들은 달러를 송금해 해외 거래소에서 비트코인을 사서 국내 거래소에 옮겨와 팔 수가 없으니 비트코인을 산다면 국내 거래소에 원화를 입금해 비싸게 사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른바 ‘김치 프리미엄’입니다. 최근에도 가끔 벌어지고 있는 ‘가두리 펌핑’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이유에서건 암호화폐 입출금이 막히면, 해당 거래소에서 특정 코인에 대한 매수세가 몰리면 수요-공급의 원리에 따라 가격이 급등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상 가격이 나타난 원유ETN 시장을 정상으로 되돌리기 위해 일단, 증권사들은 금융감독원에 ETN 발행한도를 늘리겠다고 신고했습니다. 다만, 증권사들이 원유ETN을 추가 발행해서 시장 가격을 정상화하는 데는 시간이 걸립니다. 발행한도 확대를 위해 일괄신고서를 제출한 이후 15영업일은 지나야 효력이 발생합니다. 20일 신한금융투자, 22일에야 삼성증권의 발행한도가 늘어납니다. 이 공백 기간의 투자자 피해 등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한국거래소(KRX)는 두 가지 조치를 내놨습니다. 하나는 괴리율이 5영업일 동안 30% 이상 벌어지면 그 다음날 거래를 하루 정지합니다. 다른 하나는 13일부터 4개 레버리지 원유ETN 종목의 매매 체결 방법을 접속매매에서 단일가매매로 바꿨습니다. 단일가매매는 일정시간(KRX서는 30분) 동안 주문을 모아 일정 시점에 한 가격으로 묶어 거래를 체결하는 방식입니다. 매매가 바로 체결되지 않다 보니 투자심리를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습니다. 중앙화된 거래소인 만큼 투자자 보호를 위해 중앙화된 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탈중앙화된 코인 시장에선 투자자 보호를 위한 그 어떠한 조치도 이뤄지지 않습니다. 결국, 코인러는 스스로 스마트해져야만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고란 기자 ne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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