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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커] 블록체인, 빅 브라더냐 호모 데우스냐

블록체인, 암호화폐, 빅브라더, 감시

[파커’s Crypto Story] n번방 사건의 암호화폐 추적 방식을 둘러싸고 블록체인에 대한 근원적 문제의식이 다시 고개를 드는 요즘입니다. 지난 편에서 ‘만약 암호화폐 관련 지식과 컴퓨터 기술에 모두 능통한 인물이 조주빈 같은 범죄를 보다 치밀하게 계획했다면 추적이 가능했을까’라는 가정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현재로서는 대책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었습니다. 물론 범죄 상황에는 여러 변수가 등장하기 때문에 현실에서 ‘완전 범죄’가 일어날 가능성은 낮습니다. 환금성이나 유동성 등의 문제로 모네로 같은 익명화폐가 처음부터 끝까지 P2P로 거래될 확률 역시 낮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낮은 확률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특히 미성년자까지 연관돼 있는 특수 디지털 성착취의 경우, 그런 인물이 단 한 명이라도 등장할 때 사회에 큰 파장이 생길 수 있습니다. 문제는 현 시스템 상에선 마땅히 대처할 수단이 없다는 점입니다. 그에 걸맞은 제도와 기술을 추후 뒷받침한다고 해도, 그때 역시 지금과 똑같은 양상의 범죄가 일어나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 다시는 문제를 고민하지 않아도 될 간단한 방법이 한 가지 존재하기는 합니다. #앞으로 일어날 범죄까지 모두 차단할 수 있는 방법 조주빈이 선호했다고 하는 익명화폐 모네로를 철저하게 관리하면 자금 추적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현재 업계 전문가들의 중론입니다. 이러한 확률을 줄이기 위해 KYC(고객인증제도) 확립 등의 논의가 진행되고 있죠. KYC가 존재하는 거래소에서 거래를 진행하면 모네로라고 하더라도 트랜잭션 대조를 통해 추적이 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해당 범죄자가 거래소를 비롯한 모든 암호화폐 거래 관련 기관에서 종적을 감추게 된다면 어떨까요. 완전한 P2P 세계에서 유동성 등의 이슈에 개의치 않고 자금세탁을 은밀히 진행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 경우 KYC나 애써 만든 새로운 제도는 소용없게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한번 구축만 되면 다시는 관련 문제를 고민하지 않아도 될 방법은 여기서부터 출발합니다. KYC와 같은 작은 제도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강력한 중앙 집중 시스템을 추구하면 관련 문제가 아예 사라질 수 있습니다. 중앙집권 방식이 ‘비효율적’이라는 주장은 이제 옛날 이야기입니다. 사피엔스(Sapiens) 저자 유발 하라리(Yuval Harari)에 따르면 AI(인공지능)를 비롯한 디지털 시대의 도래로 분산 데이터 처리보다 중앙집중식 데이터 처리가 더 효율적인 세상이 다가오고 있는 셈입니다. 마찬가지로 블록체인 및 암호화폐를 단 하나의 플랫폼으로 통일하면 훨씬 효율적인 체계를 갖출 수 있습니다. 익명화폐가 P2P 단으로 숨어버리면 어떤가요. 지갑 생성 단계부터 하나의 플랫폼, 하나의 암호화폐에 통제를 받는다면 그들이 계획하는 범죄는 계획조차 불가능해질 것입니다. 서로 다른 체인들을 연결하는 인터체인(Interchain)이니 이런 복잡하고 비효율적인 기술을 구현할 필요도 없습니다. 어차피 하나의 플랫폼인데 그런 걸 고민할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먼 미래에 디지털 상의 모든 데이터가 정말 블록체인으로 연결된다면 해당 체제 안에서 제2의 조주빈이 나오는 건 꿈도 못 꿀 일입니다. 오히려 하나의 체제가 가져다주는 효율성으로 스마트 콘트랙트 등을 도입하면 범죄도 100% 자동 차단할 수 있고, 기술적 확장성도 도모할 수 있습니다. #디지털 빅 브라더가 온다? 물론 이렇게 될 경우 많은 사람들이 ‘빅 브라더’를 우려합니다. 효율성 문제와는 별개로 하나의 플랫폼은 특정 존재가 모든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수 있다는 치명적 결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블록체인이라는 도구는 그 목적을 증폭시켜주는 역할을 하기에 안성맞춤이죠. 이런 측면에서 빅 브라더가 사람들을 디지털 세상으로 유도하고 온 체인(Onchain)에 모든 사람의 정보를 기록한 후, 감시 사회를 만들 계획이라는 음모론적 이야기도 괜히 나오는 건 아닙니다. 그럴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 움직임도 포착되고 있습니다. 중앙 통제 국가로 잘 알려져 있는 중국은 블록체인뿐만 아니라 4차 산업의 모든 기술을 동원해 관련 시스템을 체계화하고 있습니다. 이미 휴대폰 개통 시 안면 인식을 의무화하고 있고, 2020년까지 CCTV를 4억 대로 늘려 사회 통제를 용이하게 할 계획을 세우는 중입니다. 블록체인과 관련해서는 지난해 10월 공산당 당원 충성 서약 디앱(DApp) ‘초심’을 선보인 바 있습니다. 신원이 불분명한 민간 업체에서 출시한 디앱이 아니라 중국 공산당(CPC)이 직접 공개한 디앱입니다. 서구권에서는 디지털 공룡 기업들을 중심으로 가능성이 관찰됩니다. 페이스북의 정보유출 스캔들은 ‘디지털 빅 브라더’의 대표적 사례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가 하면 최근에는 MS(마이크로소프트)가 신체 에너지를 활용한 암호화폐 채굴 특허를 냈다고 합니다. 그 자체로는 빅 브라더를 상상하기 힘들지만, 인간의 맥박이나 뇌파를 ‘특정 기업’이 감지해 암호화폐 채굴 등의 용도로 쓸 수 있다는 가능성이 생겨났다는 것이 우려되는 지점입니다. #달콤한 중앙화와 쓰디 쓴 탈중앙화 그런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중앙 집중 시스템을 이용하는 이유는 비교가 안되는 효율성에 있습니다. 업계 용어로 보다 복잡하게 표현하면 확장성 문제에서 중앙화가 우위에 서있기 때문입니다. 개인정보가 조금 유출됐다고 해서 사람들이 페이스북·인스타그램 대신 스팀·보이스를 하지는 않죠. 구글의 광고 수익 방식에 의혹이 생겼다고 해서 브레이브 브라우저를 이용하지는 않습니다. 기존 시스템을 쉽게 버리기엔 잃게 될 효율성이 아직까진 너무 큽니다. 그에 비해 탈중앙화는 알아야할 게 너무 많고 복잡합니다. 앞으로 중앙 집중 시스템이 제공하는 효율성의 폭이 더 커진다면, 사람들은 지금보다 큰 리스크를 감수하고서라도 중앙화 방식을 계속해서 이용할지 모를 일입니다. 지금은 단순히 개인정보가 유출되거나 법 테두리 안에서 교묘하게 데이터를 판매하는 선에서 그치고 있지만, 정말 블록체인·AI·사물인터넷과 같은 4차 산업이 발달하면 그 이상의 감시 사회가 열리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일각에서 빅 브라더 실현을 우려하고 있는 까닭은 내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당한다고 하더라도, 지금보다 훨씬 안전하고 편리한 삶을 누리게 된다면 기꺼이 그 리스크를 감당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진작에 감시 사회가 무서웠다면 현재 나타나는 문제들에 대해 훨씬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는데, 그렇게 흘러가지 않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입니다. #인간은 효율성만 추구하지는 않는다 반면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인간이 효율성만 추구하는 존재는 아니라고 합니다. 유발 하라리의 말을 다시 빌리자면, 인간은 AI와는 달리 의식을 가지고 있는 존재입니다. 자유·평등과 같은 추상적 가치를 함께 추구하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페이스북은 2018년 초에 터진 정보 유출 스캔들 이후 활성 유저 수가 크게 감소했습니다. 국내만 하더라도 2017년 SNS 시장 점유율 85.33%를 기록하던 페이스북이 불과 3년 만인 2020년 1월 20.66%의 점유율을 기록했습니다. 이는 페이스북이 여전히 건재하다는 데이터와는 대치되는 지표입니다. 국가판 빅 브라더 가능성이 엿보이는 중국의 IT기기 역시 편리하고 싸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이 무턱대고 구매하지는 않습니다. 중국 측 업체 역시 때론 그러한 인식을 불식시키기 위해 노력하기도 합니다. 글로벌 웹 브라우저 시장 점유율 5위를 기록하고 있는 오페라는 2016년 중국 기업에게 인수됐지만, 기본 특징을 그대로 살린 채 운영하고 있습니다. 오페라는 인터넷 검열저항성과 저사양 최적화가 특징인 웹 브라우저입니다. 일반적인 중국의 기조와 반대되는 특징을 지녔음에도 중국 업체가 인수에 들어간 것입니다. 심지어 인수 이후에는 인터넷 통제를 겪고 있는 중국 사용자들을 위해 중국 내에 VPN 서비스를 제공했습니다. 감시 사회라는 궁극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빅 브라더의 사탕발림’이라고 할지라도, 결국엔 효율성 이면에 있는 가치에 대해 어느정도 눈치를 보는 셈입니다. #효율성의 역설에서 블록체인의 본질을 생각한다 결국 어떤 포인트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미래 블록체인의 모습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혹은 두 가지 측면 사이의 어느 지점에서 균형점을 이룰지도 모르죠) 자신을 내어주는 대신 모든 변수가 보장된 방향성에 초점을 맞춘다면 정말 우리는 빅 브라더의 시대에서 살아가게 될지도 모릅니다. 심지어 그 빅 브라더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나오는 나쁜 빅 브라더가 아니라 우리에게 빵을 잔뜩 나눠주는 착한 이미지의 빅 브라더일지도 모릅니다. 반면 많이 돌아가더라도 자신을 지키는 방향을 지속적으로 모색하는 방향은 지난하고 피곤한 길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시대는 적어도 빅 브라더는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블록체인의 본질인 탈중앙화가 여전히 유효함을 보여주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긴 시장 침체기 이후 허울만 남은 프로젝트가 많지만, 여전히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 길을 열심히 걷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려운 길인만큼 앞으로도 기술 개선은 물론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겠지만, 그 길 끝에서 자신을 지킬 수 있다면 발걸음을 내디딜만하지 않을까요. 박상혁 기자 park.sanghy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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