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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형] 블록체인에서 프랑스 혁명을 봤다

정순형, 철학자, 탈중앙화, 혁명

[철학자의 탈중앙화 잡설] 1789년 프랑스 혁명의 파장을 경계한 프로이센 왕국은 1792년 7월 프랑스 혁명정부에 선전포고를 한다. 약 4만명의 프로이센군은 국경을 넘어 파죽지세로 진격을 거듭하다가 9월 20일 파리 동북부 발미(Valmy)에서 프랑스 혁명 정부 4만명의 의용군과 최후의 결전을 벌인다. 후대에 발미 전투로 명명된 이 격돌에서 프로이센군은 높은 사기의 프랑스 의용군을 뚫지 못하고 퇴각한다. 이 전투는 사실상 프랑스군의 대승리에 가까웠다. 당시 프로이센군은 유럽 최고의 정예 부대였지만, 프랑스 의용군은 부대 운영도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못한 오합지졸이었기 때문이다. #오합지졸 프랑스군이 이길 수 있었던 이유 제대로 된 훈련조차 받지 못한 프랑스군은 어떻게 당시 세계 최강의 프로이센군을 이길 수 있었을까. 당시 프랑스 시민은 혁명 이후 민족주의로 뭉쳐 있었다. 그들의 능동적인 전투 참여는 기존 군대와 전혀 다른 차원의 의지를 바탕으로 이뤄졌다. 반면 프로이센군은 민족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프랑스군에만 있던 정신이 승패를 뒤바꾼 셈이다. 그 시절 사용되던 민족이라는 개념은 현대적 의미의 민족과 많이 달랐다. 민족이란 단순히 언어적인 개념에 머물렀다. 그나마도 전근대적 계급 체계 내에 민족으로 분류할 수 있는 부류는 귀족뿐이었다. 대다수 시민은 피지배층으로서 귀족을 섬기는 게 일이었다. 이러한 생각은 군의 규율과 전술에 그대로 반영됐다. 지배층이었던 귀족 지휘관들은 피지배층인 평민 병사를 채찍과 구타로 다스렸다. 그들을 대상으로 한 부대의 지휘와 전술 또한 ‘통제’가 중심이 됐다. 이를테면 보병 전술에서 병력 통제가 어려운 게릴라전이나 야음을 틈탄 기습작전 등은 잘 이뤄지지 않았다. 흩어지거나 어두워진 이후에 작전을 하면 통제에서 벗어난 병사들이 탈주해버렸기 때문이다. 정규군이지만 피지배층으로서 항상 통제당했던 프로이센 병사에게 국가와 민족을 지키기 위해 자발적ㆍ능동적으로 맹렬히 전투하는 프랑스군의 모습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역사는 반복된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다. 전쟁 상황은 아니지만, 필자도 비슷한 충격을 지난 5년간 블록체인 산업에서 받아 왔다. 오픈소스로 만들어진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클라이언트, 그리고 여기에 올라탄 많은 스타트업이 그 주인공이다. 비트코인 코어(비트코인 소프트웨어)는 지난 10년간 100명이 넘는 기여자들이 1만번이 넘는 코드 커밋(수정된 코드를 올리는 것)을 거치면서 만들어졌다. 개발이 이뤄지는 동안 기능 개선을 위한 이슈(일종의 게시글)만 1만7000개가 만들어졌다. 여기에 달린 댓글을 합치면 그 배수가 넘는다. 마찬가지로 이더리움의 go언어 구현 버전인 ‘go-ethereum’ 역시 100명 이상의 기여자들이 있으며, 지난 5년간 7000번의 코드 커밋이 이뤄졌다(그리고 이런 클라이언트가 4종류나 있다). 충격적인 건 기여자들 대부분이 재단(비트코인 혹은 이더리움 재단) 소속이 아니라는 점이다. 블록체인 컨퍼런스에 참가하면 더욱 황당한 장면들이 펼쳐졌다. 5명밖에 안 되는 스타트업인데 그들은 4개 대륙에 흩어져 있었다. 수개월간 깃허브(Github)ㆍ슬랙(Slack)ㆍ줌(Zoom)을 통한 협업으로 대륙간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했다. 놀라운 사실은 팀원들은 서로의 얼굴을 컨퍼런스 당일 처음 봤다는 점이다. 게다가 그들은 각자 직업이 있었다. 저녁과 새벽 시간을 쪼개서 개발을 해왔다. 그들에게는 출ㆍ퇴근 시간이나 업무 규율이 없었지만, 제품에는 매일 새로운 기능이 추가됐다. 유치원 이후 최소 20년 이상 통제된 조직에서만 생활하고 일을 해왔던 필자는 이러한 현상이 왜 생기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중ㆍ고등학교 시절에는 5분만 늦어도 교문 앞에서 벌을 섰고, 군 복무시절에서는 화장실도 마음대로 못 갔다. 사회에 나와서는 업무시간에 윗사람들 눈치보기 바빴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수백명이 온라인에 모여 직접적인 돈은 한푼도 받지 않고 자발적으로 협업을 하는 상황이 펼쳐졌다. 어떤 팀은 대륙간 시차를 넘나들며 여가 시간을 쪼개서 일하고 있었다. 이보다 더 놀라운 건, 필자가 만난 그들 모두의 눈빛과 목소리가 탈중앙화된 세상이 불러올 이 사회의 변화와 혁신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 차있었다는 점이다. #새로운 시대의 주도권은 누가 잡게 될까 무엇이 그들의 가슴을 프랑스 대혁명 당시 바스티유 감옥을 타고 오르던 시민군처럼 불타오르게 만들었을까. 무엇이 그들에게 피히테의 ‘독일 국민에게 고함’과 같은 울림을 남겼을까. 비탈릭 부테린이 쓴 ‘탈중앙화란 무엇인가(The Meaning of Decentralization)'라는 글이었을까. 아니면 비트코인이 2000만원을 넘었던 2017년 12월 춥지만 뜨거웠던 어느 날이었을까. 그 원인이 무엇이든 평생의 대부분을 시키는 일 위주로 해왔던 필자에게 탈중앙화된 세상에 대한 확신으로 움직이는 그들의 모습은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들은 밤낮없이 자신의 프로젝트를 삶의 일부인 것처럼 대했다. 출ㆍ퇴근 시간을 정확히 맞추고 출근길에 5분만 늦어도 경위서를 작성해야하는 어떤 회사가 프로이센군이라면, 그들은 프랑스 혁명군에 가까웠다. 발미 전투 2년 뒤 나폴레옹은 무훈을 세워 사단장이 됐다. 민족주의로 정신 무장한 프랑스군은 그와 함께 전 유럽을 평정했다. 2018년 암호화폐 시가총액이 한때 99경원을 넘어갔고, 그로 인해 수천 개의 블록체인 스타트업이 탄생했던 ‘혁명’이 2년 지났다. 앞으로 어떤 블록체인 스타트업이 이 산업을 평정할까. 즐겁게 지켜볼 일이다. 정순형 온더(Onther)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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