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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승] ‘내’가 ‘나’임을 어떻게 알려줄까

이대승, 블록체인, 신원인증, 데이터3법

[이대승의 블록체인 헬스케어] 심장에 이상이 있는 응급 환자가 이송 중입니다. 생명이 시시각각 위협받고 있는 상황. 구급차 안에 긴장감이 감돕니다. 응급구조대원은 심전도 기기에 환자의 전자신분증을 삽입하고 가장 가까운 병원과 통신을 연결합니다. 환자를 받을 병원에서는 구급차의 실시간 위치와 함께 환자의 이전 의무기록들을 미리 살펴봅니다. 그리고 현재 환자의 심전도 상태를 확인하면서 병원에서 조치할 일들을 재빠르게 준비합니다. 그리고 환자가 도착하자마자 즉시 시술을 하죠. 2018년 3월 방영된 SBS스페셜 <비트코인, 위대한 혹은 위험한 실험-블록체인의 미래는?>에 나온 장면입니다. 의료인으로서 이 광경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존의 응급실은 응급환자를 분류하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환자가 응급실로 내원한 병원의 기존 환자였다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대부분 과거력이나 현재 지병 등에 대한 아무런 자료 없이 순수하게 환자의 증상만으로 분류하고 치료를 시작한다는 게 문제입니다. 심지어 의식 불명과 같이 환자의 신원을 확인할 방법이 전혀 없는 경우엔 일단 ‘무명씨'라 붙여놓고 어떻게든 진단하기 위해 진땀을 뺍니다. 현실은 방송에서 나온 상황과는 많이 다른 셈이죠. 감탄만 하면서 보고 있다가 잠시 생각이 들었습니다. A라는 사람이 술을 마시고 교통사고를 당해 얼굴을 다쳐 의식 불명인 상태로 응급실에 온다면 어떨까요? 얼굴을 알아보기 힘든 상황에서 우연히도 다른 사람 B의 신분증을 들고 있었고, 병원에서는 B인 줄 오인하여 잘못된 치료를 해 A에게 문제가 생겼을 경우는 어떨까요. 이 신분증은 신원을 증명하기에 충분한 도구가 맞을까요? 위에서 예를 든 신분증은 그 정보들과 현실 세계의 육체를 연결해주는 매개체 중 하나입니다. 여기서 주목하고 싶은 부분은 바로 그 매개체 부분입니다(이 매개체를 오라클이라고 합니다). 가장 흔하게 생각할 수 있는 오라클은 지문입니다. 지문은 상당히 오랫동안 그 사람을 나타내는 증표로써 사용되어 왔습니다. 쌍둥이끼리도 서로 다르다고 알려져 있으며, 채취하기가 매우 쉽습니다. 최근 많이 사용되는 방식은 안면인식입니다. 깊이를 정확히 인지하는 카메라를 통해 얼굴의 기하학적 구조를 지도로 만들어 인증하는 방식이죠. 화장·수염·안경 착용 등의 작은 변화에도 반응해 작동하도록 설계했다고 주장합니다. 홍채 인식도 있죠. 지문은 1000만분의 1로 같은 사람이 나올 수 있지만, 홍채는 10억분의 1로 같은 것이 존재한다고 하니 겹치는 사람이 더 나오기 어렵습니다. 뇌파 인증도 있습니다. 2016년 미 전기전자학회 발간지에서는 '이 사람'이 '그 사람'인지 100%로 정확하게 알려주었다는 논문을 내기도 했습니다. 손바닥 정맥 인증시스템도 있죠. 정맥 속 환원헤모글로빈이 적외선을 흡수하는 성질을 이용해 손바닥 정맥의 패턴을 확인하고 이를 인증에 사용합니다. 접촉할 필요가 없어 지문보다 위생적이고 실제 환원헤모글로빈이 흘러야만 사용이 가능하니 컬러 인쇄 사진을 가져다 대도 작동하지 않습니다. 최근에는 아마존에서 손바닥 결제를 도입한다는 소식이 있었죠. 이외에도 부드럽게 휘는 전자 부품을 가짜 문신처럼 피부에 붙여 인증하는 디지털 문신이나, 전자 알약을 삼켜 인증하는 암호 알약 방식도 있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생체 관련 인증이 있으니, 외우기 어려운 문자와 숫자의 조합으로 구성된 블록체인의 개인키와 1:1로 대응만 시키면 생체정보는 오라클로써 잘 작동할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게 하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일단 지문은 조작이 쉽습니다. 최근 한 핸드폰 회사에서 특정 케이스를 가져다 대면 지문 인증이 고구마로도 손쉽게 뚫리는 문제가 있었죠. 지문을 어디에서든 구해서 3D 프린터로 뽑으면 평생 사용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좀 더 다양한 경우를 생각해 볼까요? 선천적 기형으로 팔, 다리가 없이 태어난 경우는 어떻게 할까요? 아니 더 비근한 예로 손을 많이 사용하는 직업을 가지는 사람의 경우에는 지문이 잘 지워지는데 이 사람을 인증할 유일한 방법이 지문밖에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얼굴인증은 당장 쌍둥이 문제가 있습니다. 얼굴을 다쳐서 성형을 할 경우에도 사용할 수 없습니다. 말단비대증과 같은 특정 질환이 있는 분은 얼굴이 완전히 변해버리기도 하죠. 홍채인식기는 이미 독일 해커 단체가 홍채를 나이트모드로 근접 촬영하고 사진을 레이저프린터로 말끔히 인쇄해 뚫어버린 전적이 있습니다. 유전자도 마찬가지로 머리카락 하나만 뽑으면 얼마든지 훔칠 수 있습니다. 요즘은 분석 가격도 굉장히 낮아져서 전체 유전자를 다 알아내는 데도 비용이 얼마 들지 않습니다. 과연 한 명의 인간을 블록체인의 개인 키와 1:1로 인증하는 궁극적 방법을 찾을 수 있을까요? 아주 극단적인 상황을 생각해 봅니다. 선천적 기형으로 손발 없이 태어난 사람이 신분증도 분실했고 만취해 의식도 없고, 발작 중이어서 뇌파도 확인할 수 없으며, 외상으로 홍채와 얼굴을 확인할 수 없는 채로 응급실 왔다면 '이 사람'이 '그 사람'임을 어떻게 증명해야 할까요? 아무리 블록체인에서 한 사람의 정보가 떠다닌다 한들 현실의 육체와 블록체인 속 개인 키를 연결할 방법이 없다면 무용지물입니다. 블록체인 속 숫자와 문자 덩어리와 현실의 육체를 연결하는 방법을 고민할수록 ‘개인이란 무엇인가‘, ‘개인을 어떻게 조작없이 분별할 수 있는가’ 등의 철학적 문제를 생각하게 합니다. 과연 다른 사람과 나를 구분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지문을 비롯한 육체일까요, 뇌파와 같은 파동일까요? 나의 신체 정보를 담은 유전자일까요? 많이 양보해서 정말 획기적인 방식이 생겨 그 정보가 블록체인 위에 올라가 나의 모든 것, 혹은 세상의 모든 것이 다 공유되는 세상이 왔을 때는 정말 좋은 것일까요? 한 명의 사람을 디지털화한다는 것, 한 사람의 모든 정보를 공유하는 행동은 지난번 살펴본 데이터 3법과 묶어 더 깊이 숙고해야 하는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대승 안과 전문의, 한양대 IAB 자문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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