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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대훈] 이대로 죽을 순 없다...금융제국의 역습

한대훈, 투자이야기, 테크핀, 금융제국

[한대훈의 투(자 이야)기] 미국 IT 기업들은 대형 은행과 손잡고 금융업 진출을 시도하고 있다. 나중엔 대형은행과 지분 싸움을 벌여야 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영역 확장에 나선 IT 기업 입장에선 지분은 나중 문제다. 일단 빠르게 고객을 확보하고 후를 도모하겠다는 것이 IT 기업의 의중일 것이다. 하지만, IT 기업의 금융업 진출이 의지만으로 되는 건 아니다. 정보 유출과 독과점을 우려한 금융당국의 규제, 양 기관의 업무 연계 속도, 시스템 다운 가능성 등 아직 풀어야할 숙제가 많다. 이 같은 규제가 당장은 은행들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고 있다. 문제는 이 울타리의 유통기한이 영원하지 않다는 점이다. 잠시 시간을 벌어준 것뿐이다. 규제가 시간을 벌어준 사이 미국 금융기업들은 IT 기업들의 확장에 맞서 IT 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하지 못하면 금융기업들도 생존을 장담하기 어렵다. 경제전문지 포춘(Fortune)에서 선정한 500대 기업 가운데 비(非)테크 기업들도 IT 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 특히, 미국 은행들의 IT에 대한 투자규모 확대가 눈에 띈다. IT 설비투자를 늘리며 금융 영역에서 IT 기업들과 벌일 한 판 승부를 준비하고 있다. 금융기업들은 자신들의 강점을 살려 디지털 자산 시장에서의 우위를 점하고, 디지털자산을 통해 수익성 확대를 도모할 것이다. 골드만삭스, 우리는 은행이 아니다 가장 앞서가는 미국 금융기관의 한 곳이 골드만삭스(Goldman Sachs)다. CEO를 지낸 로이드 블랭크페인(Lloyd Blankfein) 2015년 4월 “골드만삭스는 기술기업”이라고 선언했다. 당시 골드만삭스에는 약 3만3000명의 정규직 직원이 있었는데, 이 중 9000명이 엔지니어와 프로그래머였다. 같은 기간 페이스북(Facebook)의 전 직원 9200명이었는데 엔지니어나 프로그래머가 아닌 사람도 많았던 만큼, 2015년부터 골드만삭스의 IT 인력이 세계적 IT 기업인 페이스북보다 많았던 셈이다. 이런 골드만삭스가 최근 애플과 함께 카드를 출시했다. 골드만삭스는 애플과의 협력을 통해 리테일 부문 강화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골드만삭스는 경쟁업체들에 비해 리테일 기반이 취약하다. 정부와 기업, 고액자산가들만을 상대한다는 인식이 강한 회사기도 하다. 평범한 투자자들과 거리를 두던 골드만삭스는 금융위기 이후 소비자 금융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인식하고 리테일 부문 강화를 시도했다. 그리고 2016년 창업자 마커스 골드만(Marcus Goldman)의 이름을 딴 리테일 은행 마커스(Marcus)를 미국에서 선보였다. 이후 고금리 예금상품을 기반으로 영국 리테일 예금시장에 진출, 성공적으로 안착하는 등 점차 해외로 사업을 확장 중이다. 그래도 여전히 골드만삭스의 리테일 기반은 취약하다. 때문에 골드만삭스 입장에서 애플은 최고의 파트너다. 충성도 높은 고객을 다수 보유한 애플은 고객을 모집해 줄 최고의 기업이다. 게다가 골드만삭스는 2013년 이후 라이벌 은행들에 비해 핀테크 기업에 대한 투자를 늘려왔다. 디지털자산 OTC(장외거래) 시장을 주도하는 금융 플랫폼인 써클(Circle), 디지털 지갑을 제공하는 빗고(BitGo) 등이 대표적이다. 애플페이를 보유한 애플 입장에서도 디지털자산에 대한 인프라가 탄탄하고 투자 경험이 많은 골드만삭스가 매력적인 파트너였을 것이다. 양측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면서 두 회사는 파트너가 됐다. 이후 골드만삭스는 디지털지산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매니저를 채용했고, 디지털자산 시장에 대한 관심을 이어가고 있다. 스테이블 코인 발행에 나선 JP모건과 달리 골드만삭스는 디지털자산의 토큰화 시장에도 관심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JP모건, 금융제국의 황제는 ‘나야 나’ JP모건의 행보 역시 예사롭지 않다. ‘금융제국’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회사가 JP모건이다. JP모건의 역사를 알면 미국 금융과 경제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JP모건은 과거 금융뿐 아니라 철도ㆍ철강ㆍ통신ㆍ영화산업 등 실물 경제를 장악한 실세 중의 실세이자 미국의 근대사를 관통하는 회사다. 한 때 중앙은행의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미국 금융의 역사를 관통한 JP모건이기에 자존심이 굉장히 세다. 전통적인 화폐 시스템과 금융 시스템에 도전했던 비트코인의 등장이 달가웠을 리 없다. 제레미 다이먼(Jamie Dimon) CEO는 “비트코인은 사기”라고 치부하기도 했다. 그런 JP모건에서 이상한 움직임이 감지됐다. 다이먼은 “블록체인은 실재하는 기술”이라고 입장을 바꿨다. “암호화폐 및 디지털자산이 기존 은행 업계에 상당한 충격을 가져다줄 것”이라고도 예상했다. 전통적으로 은행이 해오던 송금이나 결제와 같은 서비스를 빼앗길 수도 있다는 긴장감도 나타나고 있다. JP모건의 최고재무책임자(CFO) 마리안 레이크(Marianne Lake)도 2016년 JP모건을 기술회사라고 선언했다. 당시 JP모건은 4만 명의 기술자로 구성된 팀을 운영 중이며, 이 중에는 지적재산권을 창출하는 1만8000명의 개발자가 포함돼 있었다. 급기야 JP모건은 ‘JPM코인’이라 불리는 자체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 계획을 발표했다. JPM코인은 JP모건의 기업 고객들끼리 오가는 실시간 결제를 일부 맡아 처리할 계획이다. 또한, JPM코인을 통해 송금방식을 대체할 계획인데, 이는 해외로 돈을 송금하는데 있어서 가장 보편화된 송금 방식인 전신 송금(wire transfer)을 대체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대기업들 사이의 결제와 청산에 JPM코인을 도입하면 결제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JPM코인은 증권을 발행하고 판매할 때 즉시 결제하는 용도로도 쓰일 수 있다. 아울러 JP모건의 해외 고객은 미국 달러화를 어느 정도 쌓아놓고 있어야 했는데 달러화 대신 JPM코인을 통해 JP모건과 거래하면 이런 번거로움을 해소할 수 있다. 다른 IT 업체들과 제휴하거나 플랫폼을 구축할 때 JPM코인이 모바일 결제 수단으로 쓰일 가능성도 있다. 피델리티, 디지털자산 금융의 원조 마지막으로, 피델리티(Fidelity)도 눈여겨볼 만하다. 피델리티는 앞에 소개한 골드만삭스나 JP모건에 비해 규모는 작다. 하지만, 디지털자산 분야에 있어서만큼은 존재감이 확실하다. 피델리티는 혁신의 DNA가 흐르고 있는 회사이고, 이 혁신의 DNA는 디지털자산에 대한 관심과 투자로 이어졌다. 2014년부터 피델리티는 비트코인에 대한 리서치를 시작했다. 이듬해에는 블록체인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을 신설했고, 2016년에는 디지털자산 분야 사업을 위해 업계와 학계에 파트너십을 구축했으며, 현재까지도 확장 중이다. 2018년 10월에는 자회사 ‘피델리티 디지털자산서비스(Fidelity Digital Asset Services)’를 설립했다. 이 회사는 뉴욕주 금융감독청(NYDFS)로부터 신탁회사 인가를 받았다. 피델리티는 이 자회사를 통해 기관투자자의 디지털자산에 대한 수탁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그밖에 영국지사를 설립하는 등 글로벌 영역 확장에도 나서고 있다. 피델리티가 디지털자산 시장에 뛰어든 이유는 명확하다. 이미 전세계 자산운용사의 경쟁은 치열하다. 수수료 인하를 통한 고객 확보에 혈안이다. 각사의 수수료 인하 전쟁으로 자산운용업의 수익은 크게 줄었다. 점점 작아지는 파이를 두고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전통적인 자산시장에서 수수료 수입이 급감했다면 새로운 시장을 통해 돌파구를 모색해야 한다. 피델리티는 디지털자산 시장에서 그 미래를 찾았다. 그렇다면 우리 은행과 증권사는? 미국의 주요 금융기관들은 테크핀(TechFin)의 시대에서, 거대 테크기업들의 영역 침범에 맞서 디지털자산 시장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고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은행과 증권사들은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JP모건처럼 자체적인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하는 것은 국내에서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결국, 골드만삭스와 피델리티의 사례를 벤치마킹해서 테크핀 시대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 이 중 디지털자산으로 업무 다변화를 천명한 골드만삭스와 피델리티의 수탁서비스(Custody)와 증권형토큰(STO)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특히 국내 은행 입장에서는 수탁서비스(Custody)를, 증권사 입장에서는 증권형토큰(STO)을 주목할 만하다. 이미 우리나라 은행은 저금리 시대 장기화에 따른 수익성 악화, 증권사는 수수료 인하 경쟁으로 발생한 브로커리지 비중 축소와 수익성 악화 등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갑작스레 개선될 가능성은 아쉽지만 매우 낮다. 피델리티가 브로커리지 1등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수익성 악화를 예상하고 사업을 다각화했듯 국내 금융기관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우리 금융기관이 해볼 만한 디지털자산 시장의 비즈니스는 다음 편에서 다루겠습니다. 한대훈 SK증권 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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