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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커] 암호화폐 프리미엄 ‘보따리상’, 무죄 받은 이유는?

박상혁, 파커, 김치 프리미엄, 재정거래

[파커’s 크립토 스토리] 2017년 암호화폐에 역대급 불장이 왔던 그날. 한 가지 특이한 현상이 있었습니다. 바로 ‘김치 프리미엄’. 김치 프리미엄은 24시간 돌아가는 각국 암호화폐 거래소의 시세 차이로 인해 나타난 현상이었는데요. 당시 다른 나라에 비해 유독 한국 거래소의 암호화폐 시세가 높게 형성돼 붙여진 이름이 김치 프리미엄이었습니다. 격차가 컸을 땐 일시적으로 외국 거래소에 비해 수십 퍼센트의 격차가 발생해 이를 이용한 ‘재정거래’가 성행했습니다. 재정거래란 시세 차이를 이용해 가격이 낮은 해외 거래소에서 암호화폐를 구매한 후, 더 가격이 높은 국내 거래소에 팔아서 수익을 내는 방식을 뜻합니다. 당시 재정거래를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을 커뮤니티에선 ‘보따리상’이라고 불렀죠. 이곳저곳에서 ‘암호화폐’라는 일종의 상품을 떼다 파는 모습이 흡사 보따리상 같아서요. 그런데 지난 14일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에서 암호화폐 보따리상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물론 지방법원의 선고라서 원고인 검찰은 항소를 신청했지만, 사실상 국내 보따리상에 대한 첫 판결이라는 점이 눈에 띕니다. 미국 거주자 통해 보따리 시도 그렇다면 원고인 검찰은 무슨 근거로 피고인을 기소한 걸까요. 우선 피고인은 해외 거래소의 암호화폐를 그냥 매입할 수 없었습니다. 2017년이라서 규제가 하나도 없었을 것 같지만, 각 거래소에서 기본적인 KYC(고객인증)나 보안 인증은 공통적으로 실시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법정통화로 암호화폐를 구매하는 일에는 상당한 제약이 따랐습니다. 이에 대한 절차는 이미 미국을 비롯한 주요 국가에서 철저히 차단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미국의 허가를 받아 정식으로 관리·감독을 받는 거래소를 제외하면 달러로 암호화폐를 구입하기란 매우 힘들었습니다. 장외거래나 직거래가 아닌 이상 말이죠. 결국 피고인이 ‘보따리’를 효율적으로 하려면 미국에 허가를 받은 거래소에서 즉시 암호화폐를 구매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미국 허가 거래소에서 외국인은 암호화폐를 구매할 수 없게 돼 있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지인들에게 부탁하는 방식으로 보따리를 계획하게 됩니다. 방식은 이랬습니다. 피고인이 미국 지인들에게 현금을 전송하면 그 지인들이 미국에서 암호화폐를 구매합니다. 그리고 구매한 암호화폐를 지인들이 피고인에게 전달하면 김치 프리미엄이 형성된 국내 거래소에 비싼 가격으로 판매합니다. 피고인은 이러한 방식을 반복하며 2018년 1월 2일경부터 3월 3일경까지 총 462회에 걸쳐 합계 129만 9586 달러를 지인들에게 송금했다고 합니다. 검찰은 이러한 정황을 토대로 피고인을 기소한 것이죠. 국내 외국환거래법 기준에 대해 알아보자 보따리 자체가 해외송금 및 외환 질서와 얽혀 있으니 처벌 기준이 되는 법은 당연히 국내 외국환거래법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검찰의 기소 기준도 외국환거래법과 관련이 있습니다. 첫 번째 핵심 쟁점은 ‘미신고’입니다. 외국환거래법에 따르면 외환거래를 했을 때 국내 거주자가 한국은행 총재에게 신고를 해야 합니다. 반면 피고인은 외환거래 과정에서 신고를 하지 않았는데요. 여기서 두 번째 쟁점이 등장합니다. 바로 신고 기준이 되는 액수입니다. 거래 규모가 ‘10억 이상’일 때 신고대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피고인의 경우 총 송금액이 129만 9586달러로, 환율이 낮았던 2017년 기준으로도 약 14억 원을 거래했습니다. 검찰이 단지 ‘보따리’를 했다는 정황만으로 피고인을 기소했던 게 아닌 셈입니다. 함정카드 발동, 3000달러 이하는 괜찮다? 이렇게 결정적인 근거를 잡았는데도 법원이 피고인에게 무죄 판결을 내린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기서 마지막 쟁점이 나옵니다. 1건당 3000달러 이하로 해외 송금을 할 경우 거래외국환은행 지정이 필요 없고, 연간송금액 한도인 5만 달러가 차감되지 않는다는 것이죠. 피고인이 참 영리하죠. 이를 미리 파악하고 송금을 할 때 3000달러 이하로 금액을 나눠서 보냈습니다. 관련 증거 자료도 제출했습니다. 법원은 결국 종합적인 판단 끝에 “3000달러 소액 송금은 연간송금액 한도를 피하기 위해 그런 것이지, 10억 원을 넘지 않도록 거래 액수를 분할하는 쪼개기 방식의 거래 행위를 하였다고 볼 만한 정황이 없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다만 미국 지인들이 해외 거래소에서 암호화폐를 매수할 때, 거래소 자체에서 설정한 거래한도 제한에 대해서는 처벌의 여지를 남겼습니다. 당시 미국 거래소는 거래 한도를 하루 2만 5000달러로 설정했다가 나중에 지인A는 하루 5만 달러, 지인B는 하루 10만 달러로 높였다고 합니다. 이때 피고인은 지인A에게 9999달러~25000달러를, 지인B에게는 2만 4000달러~10만 달러를 송금했다고 합니다. 법원은 “만약 3000달러를 초과하는 해당 금액이 사실이라면 이에 대한 과태료를 부과할 수는 있다”고 밝혔습니다. 곧, 3000달러 이하로 ‘쪼개기 송금’해 액수가 총 10억 원을 넘었다는 검찰의 주장에 대해선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그렇게 볼 수 없다는 것이 법원의 최종 입장인 셈입니다. Parker’s note 중고나라 소액 사기 피해의 파편화된 기억 대학교 재학 시절이었습니다. 정운찬 교수님과 김영식 교수님의 명작 ‘거시경제론’책값이 너무 비싸서 중고나라에서 책 구매를 한 적이 있었는데요. 당시 4만원 가까이 하던 거시경제론을 5000원에 급처하겠다고 해서 부랴부랴 사겠다고 한 기억이 있었습니다. 물론 제가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그 판매자에게 사기를 당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금액이 입금되자 판매자에게서 연락이 끊어진 것이죠. 소액이라서 그냥 넘어갈까도 했지만, 당시로선 저에게 큰 금액이었고 정의구현을 해보고 싶은 마음에 경찰서로 달려가 진정서를 썼습니다. 알고 보니 상습범이고 저보다 먼저 신고를 한 사람이 몇 있었다고 합니다. 덕분에 금방 돈을 돌려받을 수 있었습니다. 다만 이 사건 이후 저는 소액을 이용한 사기에 대해 일종의 편견을 가지게 됐습니다. 재정거래 법망을 피하기 위해 소액 송금을 한다는 이야기도 이미 2017년에 제기된 문제죠. 저는 처음에 중고나라 경험을 바탕으로 이런 ‘꼼수’에 대한 감독은 건전한 생태계를 위해 강화돼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은 편협할 뿐더러, 해외 송금의 경우엔 문제가 더 복잡합니다. 김치 프리미엄이 이슈가 됐을 당시 이미 정부에서 관련 단속을 강화한 적이 있었는데요. 이때 수많은 해외송금자와 해외 장기 체류자가 큰 불편함을 겪은 바 있습니다. 또 작은 사건을 하나하나 추적하다 보니 관련 인력의 피로도 증가와 함께 정작 큰 사건을 놓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습니다. 이후 정부는 보따리 이슈가 어느정도 잠잠해지자 단속을 원래대로 완화하기에 이릅니다. 법원도 이번 판결에 그런 요소를 고려한 것 같습니다.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이 얽혀 있는 외환 시장에서 섣불리 선례를 잘못 내렸다가는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암호화폐에 대한 정의조차 제대로 안 된 상태에서 명확한 근거를 가지고 판결하기는 힘듭니다. 피고인이 10억 원 이상의 거래를 의도적으로 했다는 증거가 불확실한 이유엔 암호화폐 관련 가이드라인이 구체적으로 짜여있지 않은 것도 한 몫 합니다. 예컨대 피고인이 3000달러 이상 송금을 했다는 증거가 제대로 잡히려면 애초에 국내외 암호화폐 거래소 공조가 이뤄져야 했습니다. 그러나 FATF 권고안에 따른 법안 마련도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에서 그런 공조가 체계적으로 이뤄지기란 어렵습니다. 아주 큰 사건이 아닌 이상 말이죠.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전에 예방 차원의 가이드라인이 신속히 마련돼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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